본문 바로가기
2008.10.07 13:26

여백 - 도종환 (77)

조회 수 11613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 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나무들, 산 위에 있는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그 뒤로 광활한 하늘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봅니다. 솟대가 빽빽한 건물에 가려 있으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솟대의 뒤에는 빈 하늘이 배경이 되어 있어야 솟대다워 보입니다. 그래야 솟대의 아름다운 멋이 살아납니다.
  
  화폭을 유화물감으로 빈틈없이 채우기보다 여백으로 그냥 남겨두는 한국화가 저는 좋습니다. 조각품도 작품 주위에 빈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작품의 맛이 제대로 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네거티브 스페이스라고 합니다.
  
  사람도 살아가는 동안 여기저기 여백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하루의 일정 중에 단 한 시간도 여백이 있는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루 생활 중에도 여백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정신적인 여백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 어디 한 군데쯤 비어 있는 것도 좋습니다. 완벽해 보이기보다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더 인간답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도 정신적인 여백, 정신적인 여유를 더 많이 갖고자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백을 여러분의 배경으로 삼아보세요. 그리로 바람 한 줄기 지나가게 해 보세요.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1632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1079
256 기억의 뒷마당 風文 2023.02.10 451
255 감동과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 風文 2023.02.11 515
254 모든 순간에 잘 살아야 한다 風文 2023.02.13 589
253 심리치유 과정에서 조심할 일 風文 2023.02.15 567
252 나를 버린 친모를 생각하며 風文 2023.02.16 742
251 미래가 가장 빨리 오는 곳 風文 2023.02.17 492
250 단 하나의 차이 風文 2023.02.18 589
249 좌뇌적 생각과 우뇌적 생각 風文 2023.02.20 491
248 요가 수련자의 기본자세 風文 2023.02.21 508
247 아기의 눈으로 바라보기 風文 2023.02.22 479
246 꽉 쥐지 않기 때문이다 風文 2023.02.24 531
245 우리 삶이 올림픽이라면 風文 2023.02.25 663
244 습득하는 속도 風文 2023.02.28 541
243 '나'는 프리즘이다 風文 2023.03.02 647
242 삶의 모든 것은 글의 재료 風文 2023.03.04 453
241 생각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風文 2023.03.07 460
240 실수에 대한 태도 風文 2023.03.08 711
239 그냥 들어주자 風文 2023.03.09 1141
238 탐험가들의 철저한 준비 風文 2023.03.10 798
237 광고의 힘 風文 2023.03.14 889
236 자부심과 자만심의 차이 風文 2023.03.16 706
235 세상을 만나는 방식 風文 2023.03.17 1466
234 진실이면 이긴다 風文 2023.03.25 588
233 어린 시절 부모 관계 風文 2023.03.25 916
232 다락방의 추억 風文 2023.03.25 60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