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888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꽃밭에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나팔꽃은 나팔꽃대로 분꽃은 분꽃대로 채송화는 채송화대로 모두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으로 모여 피어 있습니다. 나팔꽃은 분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분꽃은 채송화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맨드라미는 봉숭아를 시새움하지 않고 들국화는 달리아보다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제 모습대로 곱게 피어 있습니다.
  감은 주홍빛으로 햇살 속에 탐스럽게 익어 있고, 사과는 사과대로 반짝이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감은 사과를 부러워하지 않고 사과는 배를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똑같은 사과나무끼리 내 가지에는 열 개가 열렸는데, 옆의 나무는 스무 개가 열렸다고 시기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제 모습대로 탐스럽게 익어 있을 뿐입니다. 모과는 또 모과대로 향기에 싸여 익어 있습니다. 못생겼다고 선입견을 갖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기러기는 기러기의 날갯짓으로 날아가고 까치는 까치 제 몸짓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오르내립니다. 기러기를 부러워하는 까치가 없고, 까치를 부러워하는 기러기는 없습니다. 참새는 참새로서 살아온 제 삶의 양식이 있고, 청둥오리는 저희끼리 날아다니며 만나는 하늘과 강물이 있습니다.
  그게 자연입니다. 제 모습대로 아름답고 제 모습대로 편안한 것이 자연입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그리하여 제 모습 그대로 편안하며 제 모습 그대로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분꽃 같은 제 모습이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지 않고, 오직 장미꽃처럼 되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하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사과처럼 고운 제 빛깔을 탐스럽다 하지 않고 오렌지 빛깔처럼 산뜻하지 못하다고 조마조마해 하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아름다움에 등급을 매기고 시새움하거나 닮은꼴이 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사람은 자연 속에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여유를 잃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삶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사람처럼 자신 없어 하는 미물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너그러운 마음으로 꽃밭의 꽃들을 보세요. 이 세상 어떤 꽃도 다 제 모습 그대로 피어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2894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2272
260 너무 고민 말고 도움을 청하라 風文 2020.05.05 676
259 다시 기뻐할 때까지 風文 2020.05.06 675
258 긍정적 목표가 먼저다 風文 2020.05.02 674
257 더도 덜도 말고 양치하듯이 風文 2022.01.11 674
256 금은보화보다 더 값진 것 風文 2019.08.27 673
255 연애인가, 거래인가 風文 2023.02.02 673
254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8, 9, 10 風文 2023.06.02 673
253 '사랑을 느끼는' 황홀한 상태 風文 2023.02.01 671
252 빈둥거림의 미학 風文 2022.06.01 670
251 한 송이 사람 꽃 風文 2023.11.22 669
250 다락방의 추억 風文 2023.03.25 668
249 불안할 때는 어떻게 하죠? 風文 2022.12.17 668
248 내 옆에 천국이 있다 風文 2019.06.19 667
247 두근두근 내 인생 中 風文 2023.05.26 667
246 '몰입의 천국' 風文 2019.08.23 666
245 소원의 시한을 정하라 風文 2022.09.09 666
244 쉰다는 것 風文 2023.01.05 665
243 아, 그 느낌! 風文 2023.02.06 664
242 너무 오랜 시간 風文 2019.08.13 663
241 요청에도 정도가 있다 風文 2022.09.24 663
240 아주 위험한 인생 風文 2023.09.05 663
239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風文 2019.08.12 662
238 '첫 눈에 반한다' 風文 2019.08.21 662
237 나의 치유는 너다 風文 2019.08.06 661
236 올가을과 작년 가을 風文 2023.11.10 66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