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243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늦게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또 깨었습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방안 가득 울리고 있었습니다. 저 소리에 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는 귀뚜라미 한 마리가 톡 튀어 구석으로 몸을 피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울어댑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었는데도 귀뚜라미는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우리도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인생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쓴 한 줄의 글을 남들은 아름답다 했지만 사실은 처절하였습니다. 나의 시가 나의 울음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밤은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밤새 울었고 어떤 날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워져 버릴 수 없어서 소리 내어 울던 밤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우리도 한 마리 귀뚜라미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밤을 새우며 울고 있지 않습니다. 내 소리를 알아듣는 이, 내 목소리를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한 사람을 위해 밤을 하얗게 새우며 울고 있지 않습니다. 치열하던 마음도 뜨겁게 끓어오르던 열정도 많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우리 대신 귀뚜라미가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잠든 우리의 영혼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머리맡에 와 울면서 밤을 지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9300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8591
2827 TV에 애인구함 광고를 내보자 바람의종 2008.09.25 9683
2826 흙을 준비하라 風文 2014.11.24 9681
2825 내 안의 절대긍정 스위치 風文 2014.11.25 9681
2824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윤안젤로 2013.06.03 9677
2823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中 바람의종 2008.03.11 9665
2822 진정한 자유 바람의종 2012.11.06 9653
2821 직관과 경험 風文 2014.11.12 9652
2820 매력있다! 윤안젤로 2013.05.27 9648
2819 내 인생 내가 산다 風文 2014.08.06 9641
2818 현실과 이상의 충돌 바람의종 2008.03.16 9593
2817 내 마음의 꽃밭 윤안젤로 2013.03.23 9588
2816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by 진중권 바람의종 2007.10.05 9583
2815 돌풍이 몰아치는 날 바람의종 2012.11.23 9555
2814 젖은 꽃잎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2 9554
2813 하기 싫은 일을 위해 하루 5분을 투자해 보자 바람의종 2008.08.21 9554
2812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윤안젤로 2013.05.20 9553
2811 침묵하는 법 風文 2014.12.05 9549
2810 '실속 없는 과식' 윤영환 2013.06.28 9535
2809 '놀란 어린아이'처럼 바람의종 2012.11.27 9524
2808 정면으로 부딪치기 바람의종 2012.07.11 9516
2807 오래 기억되는 밥상 윤안젤로 2013.05.15 9488
2806 무당벌레 風文 2014.12.11 9463
2805 "여기 있다. 봐라." 風文 2014.08.11 9423
2804 소를 보았다 바람의종 2008.04.11 9417
2803 화창한 봄날 윤안젤로 2013.03.13 939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