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334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늦게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또 깨었습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방안 가득 울리고 있었습니다. 저 소리에 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는 귀뚜라미 한 마리가 톡 튀어 구석으로 몸을 피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울어댑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었는데도 귀뚜라미는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우리도 밤을 새워 글을 쓰고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인생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쓴 한 줄의 글을 남들은 아름답다 했지만 사실은 처절하였습니다. 나의 시가 나의 울음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밤은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밤새 울었고 어떤 날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워져 버릴 수 없어서 소리 내어 울던 밤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우리도 한 마리 귀뚜라미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밤을 새우며 울고 있지 않습니다. 내 소리를 알아듣는 이, 내 목소리를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한 사람을 위해 밤을 하얗게 새우며 울고 있지 않습니다. 치열하던 마음도 뜨겁게 끓어오르던 열정도 많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우리 대신 귀뚜라미가 밤을 새워 울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잠든 우리의 영혼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머리맡에 와 울면서 밤을 지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4119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3519
2835 우리는 언제 성장하는가 風文 2023.05.17 977
2834 카오스, 에로스 風文 2023.05.12 1034
2833 '살아남는 지식' 風文 2023.05.12 912
2832 역사의 흥망성쇠, 종이 한 장 차이 風文 2023.05.12 748
2831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제3장 그리스의 태초 신들 風文 2023.04.28 941
2830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風文 2023.04.28 741
2829 아무리 가져도 충분하지 않다 風文 2023.04.27 1262
2828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9. 수메르 風文 2023.04.26 923
2827 자기 가치 찾기 風文 2023.04.26 930
2826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8,이슈타르와 탐무즈 風文 2023.04.25 1037
2825 젊은이가 사라진 마을 風文 2023.04.25 876
2824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5, 6, 7 風文 2023.04.24 1075
2823 단단한 믿음 風文 2023.04.24 1078
2822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2.3,4 風文 2023.04.21 1049
2821 내가 놓치고 있는 것 風文 2023.04.21 941
2820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2.1 風文 2023.04.20 839
2819 사자와 오랑우탄 風文 2023.04.20 958
2818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2.그리스의 조소미술과 도자기 風文 2023.04.19 780
2817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 風文 2023.04.19 861
2816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고대문명 風文 2023.04.18 853
2815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며 風文 2023.04.18 631
2814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그리스의 자연 風文 2023.04.17 769
2813 내 인생은 내가 산다 風文 2023.04.17 668
2812 나만의 고독한 장소 風文 2023.04.16 596
2811 분을 다스리기 힘들 때 風文 2023.04.16 62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