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586 추천 수 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눈 덮인 산속을 헤매며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하던 멧돼지가 있었습니다. 멧돼지는 마을로 내려와 구수한 냄새를 따라 어느 한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은 집돼지의 우리였습니다. 닷새를 굶은 멧돼지는 먹을 것을 좀 나눠 달라고 집돼지에게 통사정을 하였습니다. 집돼지는 마침 죽통에 먹다 남긴 것이 있어서 선선히 허락을 했습니다. 멧돼지는 집돼지가 가르쳐 준 대로 우리 안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이튿날 주인은 횡재를 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곤 우리를 더욱 단단히 손질해 두었습니다.
  
  집돼지의 우리 속에서 겨울을 보내는 멧돼지는 먹고 사는 데엔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멧돼지는 좁은 우리 안이 불편해졌습니다. 산비탈을 마음껏 달리고 싶었고 가랑잎을 헤치고 도토리를 줍고 땅을 파서 칡뿌리를 캐며 먹이를 찾던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때부터 멧돼지는 우리를 빠져 나갈 궁리를 하였지만 상처뿐이었습니다. 어금니도 부러지고 주인은 더욱 단단한 대못으로 우리를 막아 놓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돌아 향긋한 산냄새가 멧돼지를 더욱 참을 수 없게 하던 날 밤, 멧돼지는 온몸을 우리의 판자에 던졌습니다. 마침내 판자벽 한 귀퉁이를 무너뜨린 멧돼지는 집돼지에게 말했습니다.
  
  "자 나하고 함께 산으로 가자. 주는 대로 받아먹고, 먹은 자리에서 싸고 또 그 위에 드러누워 뒤룩뒤룩 살만 찌워 봤자 그게 누구 좋은 일 시키는지 아니? 금년 봄 이 집 주인 환갑 잔칫상에나 오를 게 뻔하지."
  
  "아유, 난 골치 아파. 그런 복잡한 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귀찮게 굴지 말고 갈 테면 너나 가거라."
  
  집돼지는 검불더미 속에 코를 박은 채 귀찮다는 듯 일어서지도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멧돼지는 혼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멧돼지가 이제 산으로 가면 힘들여 일해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힘센 짐승들과도 싸워야 할 테고 우리에 갇혀 주인이 넣어 주는 먹이나 편안히 받아먹던 때와는 다른 많은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뛰쳐나온 멧돼지의 힘살은 팽팽하게 당겨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장희 님의 동화「멧돼지와 집돼지」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안주하고픈 마음과 자유에의 갈망을 두 짐승으로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의 삶의 형태를 집돼지와 멧돼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꼭 그렇게만은 살 수 없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일단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큰 명제 때문일 것입니다. 더 단순히 말하면 하루 세 끼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에의 요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밥을 어떻게 먹고 사는가 하는 것도 굶지 않고 사는 일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2740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2150
2710 「우리처럼 입원하면 되잖아요」(시인 유홍준) 바람의종 2009.07.17 6903
2709 「웃는 가난」(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18 5910
2708 「웃는 동물이 오래 산다」(시인 신달자) 바람의종 2009.05.15 7738
2707 「웃는 여잔 다 이뻐」(시인 김소연) 1 바람의종 2009.06.29 9244
2706 「웃음 1」(소설가 정영문) 바람의종 2009.06.16 6643
2705 「웃음 2」(소설가 정영문) 바람의종 2009.06.19 5784
2704 「웃음 3」(소설가 정영문) 바람의종 2009.06.25 5842
2703 「웃음 배달부가 되어」(시인 천양희) 바람의종 2009.06.12 6026
2702 「웃음꽃이 넝쿨째!」(시인 손정순) 바람의종 2009.07.31 8455
2701 「의뭉스러운 이야기 1」(시인 이재무) 바람의종 2009.08.05 6922
2700 「의뭉스러운 이야기 2」(시인 이재무) 바람의종 2009.08.06 7267
2699 「의뭉스러운 이야기 3」(시인 이재무) 바람의종 2009.08.07 6846
2698 「이런 웃음을 웃고 싶다」(시인 김기택) 바람의종 2009.05.20 8078
2697 「인생재난 방지대책 훈련요강 수칙」(시인 정끝별) 바람의종 2009.06.01 7254
2696 「죽은 연습」(시인 서규정) 바람의종 2009.07.21 7375
2695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시인 정끝별) 바람의종 2009.06.09 6111
2694 「진수성찬」(시인 이상섭) 바람의종 2009.08.11 6618
2693 「진한 눈물의 감동 속에도 웃음이 있다 」(시인 신달자) 바람의종 2009.05.20 7930
2692 「첫날밤인데 우리 손잡고 잡시다」(시인 유안진) 바람의종 2009.05.17 8783
2691 「추어탕의 맛」(시인 조용미) 바람의종 2009.07.13 9295
2690 「출근」(시인 김기택) 2009년 5월 22일_열아홉번째 바람의종 2009.05.24 8099
2689 「충청도 말에 대하여」(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09 6462
2688 「친구를 찾습니다」(소설가 한창훈) 바람의종 2009.06.09 8366
2687 「칠번출구」(시인 정끝별) 2009년 5월 21일_열여덟번째 바람의종 2009.05.24 7770
2686 「할머니가 다녀가셨다!」(시인 정끝별) 2009년 5월 25일_스무번째 바람의종 2009.05.25 692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