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8.13 09:46

매미 - 도종환 (55)

조회 수 7458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매미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55>


  
  누구에게나 자기 생의 치열하던 날이 있다
  제 몸을 던져 뜨겁게 외치던 소리
  소리의 몸짓이
  저를 둘러싼 세계를
  서늘하게 하던 날이 있다
  
  강렬한 목소리로 살아 있기 위해
  굼벵이처럼 견디며 보낸 캄캄한 세월 있고
  그 소리 끝나기도 전에 문득 가을은 다가와
  형상의 껍질을 벗어 지상에 내려놓고
  또다시 시작해야 할 가없는 기다림
  기다림의 긴 여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매미소리가 요란한 아침입니다. 밤새 매미소리 때문에 잠 못 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도시의 매미는 시골 매미보다 더 악착스럽게 울어댑니다. 매미소리도 소음공해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한여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는 서늘한 소리로 들리는데 도시에서는 악을 쓰고 울어대는 소리로만 들립니다.
  
  매미의 생애 중에 몸을 받아 태어나 살아 있는 여름의 한 주일은 가장 중요한 하루하루입니다. 그 시기 안에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세상을 떠납니다. 제 존재를, 존재의 위치를 알리는 수단으로 매미는 웁니다. 가장 치열하고 뜨겁게 울어야 짝짓기를 할 수 있고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자동차 소리를 비롯한 각종 소음 때문에 제 날갯짓 하는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저렇게 악을 쓰며 울어대는 걸 보면.
  
  살 수 있는 날이 딱 일주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몸짓 어떤 소리를 질렀을까요? 우리 역시 그 기간을 가장 치열하고 뜨겁게 살려고 몸부림치지 않았을까요? 주어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다시 또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가없는 기다림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 기다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 생각을 하면서 이 시를 썼습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398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3366
210 '정원 디자인'을 할 때 風文 2017.12.14 2951
209 '정말 힘드셨지요?' 風文 2022.02.13 812
208 '정말 이게 꼭 필요한가?' 風文 2020.05.05 802
207 '저쪽' 세계로 통하는 문 바람의종 2012.12.11 7407
206 '저는 매일 놀고 있어요' 윤안젤로 2013.04.11 7329
205 '저 큰 나무를 봐' 바람의종 2010.08.18 4013
204 '저 너머에' 뭔가가 있다 바람의종 2012.01.13 5163
203 '잘 사는 것' 윤안젤로 2013.05.15 7253
202 '작가의 고독'에 대해서 風文 2015.02.09 6090
201 '자발적인 노예' 風文 2019.08.15 847
200 '자리이타'(自利利他) 風文 2015.06.20 5656
199 '자기한테 나는 뭐야?' 風文 2023.05.19 681
198 '자기 스타일' 바람의종 2012.11.27 8527
197 '일을 위한 건강' 風文 2022.02.10 945
196 '일심일덕', 한마음 한뜻으로 風文 2015.07.05 7437
195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거야' 바람의종 2011.01.26 3506
194 '인기 있는' 암컷 빈대 바람의종 2012.07.02 8093
193 '이틀 비 오면, 다음 날은 비가 안 와' 風文 2022.01.29 751
192 '이미 회복되었다' 바람의종 2011.08.27 4799
191 '이까짓 감기쯤이야' 바람의종 2009.12.09 4368
190 '이 나이에...' 바람의종 2010.02.01 3901
189 '의미심장', 의미가 심장에 박힌다 風文 2024.02.08 750
188 '위대한 일'은 따로 없다 風文 2022.02.10 849
187 '위대한 나' 바람의종 2010.05.17 2974
186 '욱'하는 성질 바람의종 2012.09.11 801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