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8731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나는 차별, 가난, 착취, 식민주의에 줄기차게 반대했다. 불황, 전쟁, 파시즘을 겪으며 분노했다. 그런 일들은 아무리 곱게 봐도 문젯거리였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 전체가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 스스로 파멸해 가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나는 대안을 마련하고 실현하려는 노력 없이 사회에 반대만 하는 것은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가까이에서 보았던 부정의와 불평등을 뿌리뽑을 수 있다고 믿으며 제도의 틀에서 일어났던 여러 변화에 반대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고 지지하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분명히 이 문명은 결코 조화로운 삶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생산성을 높여 가난과 실업, 착취, 차별, 식민주의를 몰아내기는커녕 이 부도덕한 것들을 일부러 퍼뜨려 거기에서 이윤까지 냈다. 나는 반대하고 저항하고 제안했다. 그러자 사회는 내 밥벌이를 빼앗고 내 영향력과 신분까지 빼앗으며 나를 비웃었다.
  이제 투쟁을 포기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을 것인가? 힘센 이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이런 사회 불의에 반대하기를 그만두고 눈앞에 버티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용서를 구한 뒤, 앞으로는 내가 반대했던 사회 체제에 이바지하고 그를 찬양하겠노라고 약속할 것인가?
  
  선뜻 결정 내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넓게는 모든 사회 관계의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원칙의 문제였다. 그대로 갈 것인가. 비켜날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오래도록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나만이 이런 갈림길에 맞닥뜨린 것이 아니었다. 사회 의식이 있는 같은 시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듯 의문과 실망투성이인 난관은 역사를 돌이켜볼 때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내 갈림길, 우리 세대의 갈림길, 서구인의 갈림길, 역사에 나타난 인류의 갈림길은 이상, 꿈, 희망, 목표, 계획으로 나아가는 길과 현실의 제약에 머무는 길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이면서 또 인류 공동체의 일부로서, 한 사람은 모순, 양자택일, 갈림길,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하나를 고르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제때에 분명히 행동하면 하나는 고를 수 있다. 머뭇거리거나 옆걸음질치거나 미적거린다면 둘 다 놓치고 만다.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 이런 명제를 앞에 놓고 스콧니어링이 던진 이 말이 어쩌면 이렇게 지금 우리의 현실을 향해 던지는 질문처럼 가슴을 때리며 다가오는지요?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598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5438
210 풍족할 때 준비하라 風文 2019.08.26 924
209 프란시스코 교황의 '아름다운 메시지' 風文 2020.05.06 945
208 플라시보 효과 바람의종 2012.04.20 5846
207 피곤해야 잠이 온다 風文 2022.01.30 893
206 피땀이란 말 바람의종 2012.04.03 6403
205 피로감 風文 2020.05.02 933
204 피의 오염, 자연 치유 風文 2019.06.19 1010
203 피천득의 수필론 風文 2023.11.22 986
202 피해갈 수 없는 사건들 風文 2022.05.26 1102
201 핀란드의 아이들 - 도종환 (123) 바람의종 2009.02.02 8487
200 하기 싫은 일을 위해 하루 5분을 투자해 보자 바람의종 2008.08.21 9866
199 하나를 바꾸면 전체가 바뀐다 바람의종 2011.08.12 6400
198 하나만 아는 사람 風文 2023.04.03 930
197 하나의 가치 바람의종 2008.04.29 7064
196 하느님의 사랑, 우리의 사랑 - 도종환 (80) 바람의종 2008.10.13 7931
195 하늘 같은 지도자보다 바다 같은 지도자 윤안젤로 2013.04.19 9124
194 하늘, 바람, 햇살 바람의종 2013.01.31 8006
193 하늘나라에 교실을 짓자꾸나! 風文 2020.06.18 1006
192 하늘에 반짝반짝 꿈이 걸려있다 바람의종 2008.12.23 6080
191 하늘에서 코끼리를 선물 받은 연암 박지원 바람의종 2008.02.09 14162
190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風文 2022.12.02 1189
189 하늘의 눈으로 보면 바람의종 2012.05.22 9009
188 하루 10분 일광욕 風文 2014.10.10 11595
187 하루 2리터! 바람의종 2011.05.12 4670
186 하루 가장 적당한 수면 시간은? 風文 2022.05.30 135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