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26 15:15
우기 - 도종환 (48)
조회 수 9095 추천 수 17 댓글 0
새 한 마리 젖으며 먼 길을 간다
하늘에서 땅 끝까지 적시며 비는 내리고
소리 내어 울진 않았으나
우리도 많은 날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다
하늘은 언제든 비가 되어 적실 듯 무거웠고
세상은 우리를 버려둔 채 낮밤 없이 흘러갔다
살다보면 매지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라
그런 날 늘 크게 믿으며 여기가지 왔다
새 한 마리 비를 뚫고 말없이 하늘 간다.
주말까지 계속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어제 낮에 비가 내리고 있는데 바쁘게 날갯짓을 하며 어딘가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광활한 하늘을 날아가는 한 마리 새. 그런 새의 모습을 보며 이 시를 썼습니다. 젖으며 빗속에서도 먼 길을 가야하는 새. 그 새의 모습이 얼마나 안스럽던지요. 우리도 그 새처럼 피할 길 없는 빗줄기에 젖으며 남모르는 험한 길을 많이도 지나왔습니다. 젖은 채로 먼 길을 가야하는 절박한 날들이 우리에겐 많았습니다.
하늘은 언제든지 비가 되어 내릴 구름으로 가득한데, 젖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한 개인에 대해 세상은 그다지 크게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구름 걷히고 하늘 개는 날 있으리란 믿음이 있어 우리는 삽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빗속에서 젖으며 먼 길을 가는 새도 멀지 않은 곳에 날개를 접고 쉴 곳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말없이 하늘을 건너가는지도 모릅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새도 젖고 우리도 젖어 있습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15625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105108 |
310 | 테리, 아름다운 마라토너 | 바람의종 | 2008.02.22 | 8905 |
309 | 내 사랑, 안녕! | 風文 | 2014.08.11 | 8909 |
308 | 다리가 없는 새가 살았다고 한다. | 바람의종 | 2008.04.05 | 8910 |
307 | 그대는 황제! | 風文 | 2014.12.28 | 8918 |
306 | 고백할게 | 바람의종 | 2008.03.14 | 8921 |
305 | 겁먹지 말아라 | 風文 | 2014.12.04 | 8922 |
304 | 같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 | 바람의 소리 | 2007.08.31 | 8926 |
303 |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행복해지는 법 | 바람의종 | 2008.04.02 | 8931 |
302 | 문제아 | 風文 | 2014.12.08 | 8932 |
301 | 이장님댁 밥통 외등 | 바람의종 | 2008.07.04 | 8965 |
300 |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 바람의종 | 2013.01.10 | 8969 |
299 | 창밖의 눈 | 바람의종 | 2013.01.25 | 8973 |
298 | 그대 생각날 때면 | 風文 | 2015.08.09 | 8975 |
297 | 그들의 뒤를 따라가 보자 | 바람의종 | 2008.03.06 | 8987 |
296 | '느낌' | 風文 | 2014.08.12 | 8990 |
295 | 자작나무 - 도종환 (127) | 바람의종 | 2009.02.06 | 8996 |
294 | 하늘의 눈으로 보면 | 바람의종 | 2012.05.22 | 9004 |
293 | 아는 만큼 보인다? | 風文 | 2014.08.06 | 9008 |
292 | 위대한 당신의 위대한 판단 | 바람의종 | 2012.12.21 | 9009 |
291 | 간절하지 않으면 꿈꾸지 마라 | 윤안젤로 | 2013.03.13 | 9021 |
290 | 원초적인 생명의 제스처, 문학 | 바람의종 | 2008.05.06 | 9029 |
289 | 카프카의 이해: 먹기 질서와 의미 질서의 거부 | 바람의종 | 2008.08.19 | 9034 |
288 | 개 코의 놀라운 기능 | 바람의종 | 2008.05.08 | 9046 |
287 | 희망이란 | 바람의종 | 2009.07.31 | 9064 |
286 | 8.15와 '병든 서울' - 도종환 (57) | 바람의종 | 2008.08.19 | 90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