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7.21 18:04

개울과 바다 - 도종환

조회 수 9455 추천 수 2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개울은 제가 그저 개울인 줄 안다
  산골짝에서 이름 없는 돌멩이나 매만지며
  밤에는 별을 안아 흐르고 낮에는 구름을 풀어
  색깔을 내며 이렇게 소리없이
  낮은 곳을 지키다 가는 물줄기인 줄 안다
  물론 그렇게 겸손해서 개울은 미덥다
  개울은 제가 바다의 핏줄임을 모른다
  바다의 시작이요 맥박임을 모른다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소읍의 변두리를 흐린 낯빛으로 지나가거나
  어떤 때는 살아 있음의 의미조차 잊은 채
  떠밀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는 줄로 안다
  쏘가리나 피라미를 키우는 산골짝 물인지 안다
  그러나 가슴속 그 물빛으로 마침내
  수천 수만 바닷고기를 자라게 하고
  어선만한 고래도 살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개울은 알게 될 것이다
  제가 곧 바다의 출발이며 완성이었음을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그토록 꿈꾸던 바다에 이미 닿아 있다는 걸
  살아 움직이며 쉼없이 흐른다면
  
  「개울」이란 제 시입니다. 골짜기에서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개울입니다. 개울은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물입니다. 그저 쏘가리나 피라미가 사는 산골짝 물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바다도 개울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개울은 비록 낮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물이지만 그 개울 하나 하나가 바다의 핏줄이었던 것입니다. 바다의 시작이요 맥박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까지 가려면 멈추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살아 움직이면서 쉼 없이 흘러야 합니다. 주저앉거나 포기하면 그 순간부터 개울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맑은 모습으로 흘러야 합니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므로 개울물이 맑은 것입니다. 그래야 바다의 출발이고 완성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개울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핏줄처럼 다른 물들과 연결되어 있고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흘러가 바다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439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3859
435 건강과 행복 風文 2015.02.14 6770
434 걱정하고 계시나요? 윤안젤로 2013.06.05 10654
433 걱정말고 부탁하세요 바람의종 2010.02.10 4407
432 거절의 의미를 재조명하라 風文 2022.09.16 865
431 거절을 우아하게 받아들여라 風文 2022.10.09 724
430 거절을 열망하라 - 릭 겔리나스 風文 2022.10.06 731
429 거절은 성공의 씨앗 風文 2022.09.15 891
428 거인의 어깨 風文 2019.08.31 859
427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바람의종 2011.09.29 5348
426 거울과 등대와 같은 스승 風文 2022.05.23 822
425 거울 속의 흰머리 여자 風文 2023.08.22 2069
424 거울 선물 風文 2019.06.04 1098
423 거룩한 나무 風文 2021.09.04 478
422 거기에서 다시 일어서라 風文 2019.08.16 888
421 갱년기 찬가 風文 2022.12.28 818
420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바람의종 2009.09.21 5702
419 개척자 바람의종 2011.02.10 4192
418 개울에 물이 흐르다 바람의종 2009.08.27 5387
» 개울과 바다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7.21 9455
416 개 코의 놀라운 기능 바람의종 2008.05.08 8990
415 같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 바람의 소리 2007.08.31 8900
414 강해 보일 필요가 없다 바람의종 2009.04.25 5685
413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 30대 남성 風文 2020.05.22 997
412 갑자기 25m 자라는 대나무 바람의종 2012.01.13 6046
411 감탄하는 것 바람의종 2012.04.11 512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