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65 추천 수 2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생각의 집부터 지어라








 설계를 의뢰하려는 이들 중에는 ‘구름 같은 집’의 겉모양에 집착하거나, 집을 지을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정작 설계는 초스피드로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이야말로 집을 지을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집을 잘 지으려면 무엇보다 생각부터 잘 지어야 하는데, 밑바탕도 없이 대뜸 그림부터 그리려는 조급함이 여간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좋은 설계를 하는 데 있어 소요 공간의 기능이나 면적 등도 중요한 필요조건이지만 비껴가서는 안 될 본질적인 물음들이 있다. 이를테면, ‘집은 왜 지으려 하는가?’, ‘집을 지어서 무엇을 얻으려(즐기려) 하는가?’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들이 평소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들을 살펴보기 위해 소설가 유진오의 《창랑정기》나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 또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은 작품들을 읽어 보았는지 슬며시 묻곤 한다. 물론 읽어 보지 않았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하면서, 이들 작품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집의 진면목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며 제대로 된 집을 위해 어떠한 개념이 필요한지를 내 식대로 풀이해 드리곤 한다. 그렇게 문학을 화두로 삼아 ‘사유의 집’을 함께 그리다 보면 서로의 인연이 어디까지일지를 대략 가늠하게 된다. 문학적인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 다소나마 정서적인 교감이 오고가는 경우라야 일을 함께 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 내 나름의 일감 선택 방식이다. 


 수많은 문학 텍스트가 여실히 증거하고 있듯이 집을 제대로 짓는다 함은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의 소중한 인연을 잘 보듬어 이어가고자 함이다. 또한 집을 굳건히 일으켜 세운다 함은 단순히 아름다운 모양이나 풍광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스며들 정신을 구축해 내는 것인 동시에 집주인의 자화상(인품)을 곧바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계에 뜸을 들여가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사유의 집 짓기는 집의 뼈대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기초공사나 다름없다. 생각이 부실하면 집 짓기는 형태의 유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집 모양이야 건축가에게 맡기더라도 사유의 텃밭만큼은 집주인도 함께 일구어야 한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대지 위에 ‘사유의 집’을 짓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의 기본이요 출발이다.


김억중 님 | 건축가 , 한남대 교수
-《행복한동행》2008년 7월호 중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0124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9443
1652 생명 바람의종 2010.01.09 3532
1651 생긋 웃는 얼굴 바람의종 2008.12.11 5080
» 생각의 집부터 지어라 바람의종 2008.07.12 6365
1649 생각의 산파 바람의종 2009.03.30 5775
1648 생각은 아침에 風文 2024.02.17 398
1647 생각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風文 2023.03.07 406
1646 생각도 진화한다 바람의종 2012.01.01 3787
1645 생각 관리 바람의종 2010.09.13 3159
1644 새해에는... 風文 2014.12.13 6369
1643 새해에는... 風文 2016.12.10 4941
1642 새해 소망 風文 2014.12.15 7421
1641 새해 새 아침 바람의종 2011.01.30 3232
1640 새해 산행 - 도종환 (116) 바람의종 2009.01.23 6283
1639 새처럼 연약한 것 바람의종 2008.03.06 5622
1638 새장처럼 부서진 사랑 風文 2020.06.17 1057
1637 새장에 갇힌 새 風文 2015.06.03 5018
1636 새벽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風文 2023.11.01 804
1635 새벽에 용서를 바람의종 2012.10.02 7879
1634 새벽 풀 냄새 바람의종 2012.07.16 6491
1633 새벽 겸손 바람의종 2010.03.23 4440
1632 새롭게 시작하자 바람의종 2013.01.02 7393
1631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바람의종 2012.12.21 8217
1630 새로운 선택 바람의종 2010.08.31 4600
1629 새로운 발견 바람의종 2008.09.24 4879
1628 새로운 땅 바람의종 2011.08.29 519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