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6364 추천 수 2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생각의 집부터 지어라








 설계를 의뢰하려는 이들 중에는 ‘구름 같은 집’의 겉모양에 집착하거나, 집을 지을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정작 설계는 초스피드로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이야말로 집을 지을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집을 잘 지으려면 무엇보다 생각부터 잘 지어야 하는데, 밑바탕도 없이 대뜸 그림부터 그리려는 조급함이 여간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좋은 설계를 하는 데 있어 소요 공간의 기능이나 면적 등도 중요한 필요조건이지만 비껴가서는 안 될 본질적인 물음들이 있다. 이를테면, ‘집은 왜 지으려 하는가?’, ‘집을 지어서 무엇을 얻으려(즐기려) 하는가?’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들이 평소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들을 살펴보기 위해 소설가 유진오의 《창랑정기》나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 또는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은 작품들을 읽어 보았는지 슬며시 묻곤 한다. 물론 읽어 보지 않았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하면서, 이들 작품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집의 진면목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며 제대로 된 집을 위해 어떠한 개념이 필요한지를 내 식대로 풀이해 드리곤 한다. 그렇게 문학을 화두로 삼아 ‘사유의 집’을 함께 그리다 보면 서로의 인연이 어디까지일지를 대략 가늠하게 된다. 문학적인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 다소나마 정서적인 교감이 오고가는 경우라야 일을 함께 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 내 나름의 일감 선택 방식이다. 


 수많은 문학 텍스트가 여실히 증거하고 있듯이 집을 제대로 짓는다 함은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의 소중한 인연을 잘 보듬어 이어가고자 함이다. 또한 집을 굳건히 일으켜 세운다 함은 단순히 아름다운 모양이나 풍광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스며들 정신을 구축해 내는 것인 동시에 집주인의 자화상(인품)을 곧바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계에 뜸을 들여가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사유의 집 짓기는 집의 뼈대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기초공사나 다름없다. 생각이 부실하면 집 짓기는 형태의 유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집 모양이야 건축가에게 맡기더라도 사유의 텃밭만큼은 집주인도 함께 일구어야 한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대지 위에 ‘사유의 집’을 짓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의 기본이요 출발이다.


김억중 님 | 건축가 , 한남대 교수
-《행복한동행》2008년 7월호 중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9906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9170
2052 손끝 하나의 친밀함 風文 2014.12.08 6392
2051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2) - 도종환 바람의종 2008.12.06 6389
2050 1분 바람의종 2009.04.25 6389
2049 조화 바람의종 2009.08.29 6380
2048 위대한 인연 윤안젤로 2013.03.05 6378
2047 정신적 지주 바람의종 2009.03.14 6375
2046 오늘따라 아버지의 말씀이... 바람의종 2012.07.02 6368
2045 짧은 휴식, 원대한 꿈 바람의종 2011.08.05 6365
» 생각의 집부터 지어라 바람의종 2008.07.12 6364
2043 언제까지 예쁠 수 있을까? 風文 2015.01.13 6363
2042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바람의종 2009.05.26 6361
2041 11자의 기적 風文 2015.02.14 6360
2040 새해에는... 風文 2014.12.13 6358
2039 세 가지 즐거움 - 도종환 (117) 바람의종 2009.01.23 6357
2038 봄은 차례차례 옵니다 - 도종환 (141) 바람의종 2009.03.14 6356
2037 힘이 부치거든 더 힘든 일을 하라 바람의종 2010.05.31 6355
2036 행복한 하루 바람의종 2009.05.15 6352
2035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風文 2014.12.22 6349
2034 외물(外物) 바람의종 2008.12.26 6347
2033 바람직한 변화 바람의종 2011.12.28 6342
2032 벌거벗은 마음으로 바람의종 2012.12.31 6341
2031 '좋은 점은 뭐지?' 바람의종 2011.10.25 6338
2030 기초, 기초, 기초 바람의종 2008.12.15 6336
2029 쑥갓꽃 - 도종환 (59) 바람의종 2008.08.21 6332
2028 당신의 외로움 바람의종 2012.11.02 632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