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5.23 11:21

초록 꽃나무 / 도종환

조회 수 10333 추천 수 2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초록 꽃나무 / 도종환




꽃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돌아와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나무는 다시 똑같은 초록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
그렇게 함께 서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숲을 이룬다
꽃피던 날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초록 꽃나무」전문

매화나무가 초록 잎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과나무도 목련나무도 산벚나무도 다 초록 잎으로 함께 흔들리고 있습니다. 꽃이 피어 있을 때는 꽃만으로 구분이 가던 나무들인데 "꽃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 돌아와 있"습니다. 두충나무 헛개나무 뽕나무와 섞여 있어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꽃나무들은 어쩌면 이렇게 초록에 묻히는 것이 서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초록으로 하나 되어 섞이면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 그늘을 만들고 /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 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꽃나무에서 비로소 숲을 이루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꽃 피던 날은 짧았지만" 나무의 일생 중에는 꽃 진 뒤에 초록 잎으로 지내는 날이 훨씬 더 많습니다. 초록의 날들이야말로 나무의 생명이 가장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날입니다. 우리가 꽃피던 화려한 날들에만 매어 있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5389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4866
2885 저 하늘 저 별을 보라 風文 2014.11.24 10448
2884 죽은 돈, 산 돈 風文 2014.12.07 10435
2883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바람의종 2012.11.01 10431
2882 한 걸음 떨어져서 나를 보라 바람의종 2013.02.05 10428
2881 황무지 風文 2014.12.22 10397
2880 하루를 시작하는 '경건한 의식' 윤안젤로 2013.03.07 10378
2879 잘 자는 아기 만드는 '잠깐 멈추기' 風文 2013.07.07 10372
2878 화를 다스리는 응급처치법 바람의종 2012.12.07 10371
2877 지금 내 가슴이 뛰는 것은 風文 2015.03.11 10363
2876 희망이란 바람의종 2012.08.01 10360
2875 '백남준' 아내의 고백 윤안젤로 2013.04.03 10356
2874 집중력 風文 2014.08.11 10354
2873 눈에 보이지 않는 것 風文 2014.08.12 10344
» 초록 꽃나무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23 10333
2871 존경받고, 건강해지려면 윤안젤로 2013.04.11 10320
2870 세상에서 가장 슬픈건.. 風磬 2007.01.19 10309
2869 누군가 윤안젤로 2013.05.27 10282
2868 「그녀 생애 단 한 번」(소설가 정미경) 바람의종 2009.06.09 10278
2867 첼로를 연주할 때 윤안젤로 2013.04.11 10266
2866 함께 산다는 것 風文 2014.08.06 10248
2865 들꽃은 햇빛을 찾아 옮겨 다니지 않는다 風文 2014.12.11 10234
2864 사고의 틀 윤영환 2013.06.28 10217
2863 양철지붕에 올라 바람의종 2008.08.27 10216
2862 두 개의 문 風文 2014.08.29 10202
2861 이런 인연으로 살면 안 될까요 바람의 소리 2007.09.03 1019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