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5.08 13:01

어머니 / 도종환

조회 수 7220 추천 수 1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어머니 / 도종환




어머니 살아 계실 적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당신이 막노동판에서 벽돌을 등에 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나르실 때, 함께 지나가던 동무들이 말했습니다. "정홍아, 네 어머니 저기 일하시네." "잘못 봤어, 우리 어머니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저런 일 안 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길고 힘든 노동에 지쳐 뼈만 남은 얼굴로 일하시는 어머니를, 나는 보고도 못 본 척했습니다.
  
  그날부터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머니 일하시던 공사장, 그 길 가까이 지나갈 수 없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이 그 길에 배어 비바람 불고 눈보라 몰아쳐도, 아무리 씻고 또 씻고 지워도 그대로 남아서, 시퍼렇게 멍든 상처로 남아서....
  
  서정홍 시인이 쓴「지금까지」라는 시입니다. "길고 힘든 노동에 지쳐 뼈만 남은 얼굴로 일하시"던 어머니. 우리 어머니들 중에는 이런 어머니 많았습니다. 가난한 살림 꾸려가느라, 자식 키우느라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들 참 많습니다. 그런 어머니 학교에 오시면 부끄러워 숨던 자식들 있었습니다. 길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못 본 척 피하던 자식들 있었습니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그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리 씻고 또 씻고 지워도 그대로 남아" 있는 부끄러운 상처 때문에 눈물 흘리는 자식들 있습니다. 시퍼렇게 멍든 상처 때문에 어머니가 일하시던 그 길 가까이 지나갈 수 없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환자일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는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335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2695
2910 나의 인생 이야기, 고쳐 쓸 수 있다 風文 2023.08.25 808
2909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風文 2023.08.24 738
2908 살아 있음에 감사하렴 風文 2023.08.23 807
2907 거울 속의 흰머리 여자 風文 2023.08.22 1969
2906 독일의 '시민 교육' 風文 2023.08.21 734
2905 내면의 에너지 장 風文 2023.08.18 846
2904 시간이라는 약 風文 2023.08.17 752
2903 이야기가 곁길로 샐 때 風文 2023.08.14 974
2902 살아 있는 글쓰기 風文 2023.08.11 762
2901 단 몇 초 만의 기적 風文 2023.08.10 836
2900 포트폴리오 커리어 시대 風文 2023.08.09 654
2899 세상을 더 넓게 경험하라 風文 2023.08.09 851
2898 많은 것들과의 관계 風文 2023.08.07 754
2897 동사형 꿈 風文 2023.08.05 876
2896 24시간 스트레스 風文 2023.08.05 753
2895 빨래를 보면 다 보인다 風文 2023.08.04 763
2894 희망이란 風文 2023.08.04 1259
2893 밀가루 반죽 風文 2023.08.03 638
2892 육체적인 회복 風文 2023.08.03 802
2891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風文 2023.08.02 819
2890 소녀 같은 할머니, 소년 같은 할아버지 風文 2023.08.02 975
2889 청년들의 생존 경쟁 風文 2023.07.30 982
2888 두려움의 마귀 風文 2023.07.30 796
2887 자기 존엄 風文 2023.07.29 708
2886 흥미진진한 이야기 風文 2023.07.29 70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