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5.08 13:01

어머니 / 도종환

조회 수 7301 추천 수 1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어머니 / 도종환




어머니 살아 계실 적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당신이 막노동판에서 벽돌을 등에 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나르실 때, 함께 지나가던 동무들이 말했습니다. "정홍아, 네 어머니 저기 일하시네." "잘못 봤어, 우리 어머니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저런 일 안 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길고 힘든 노동에 지쳐 뼈만 남은 얼굴로 일하시는 어머니를, 나는 보고도 못 본 척했습니다.
  
  그날부터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머니 일하시던 공사장, 그 길 가까이 지나갈 수 없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이 그 길에 배어 비바람 불고 눈보라 몰아쳐도, 아무리 씻고 또 씻고 지워도 그대로 남아서, 시퍼렇게 멍든 상처로 남아서....
  
  서정홍 시인이 쓴「지금까지」라는 시입니다. "길고 힘든 노동에 지쳐 뼈만 남은 얼굴로 일하시"던 어머니. 우리 어머니들 중에는 이런 어머니 많았습니다. 가난한 살림 꾸려가느라, 자식 키우느라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들 참 많습니다. 그런 어머니 학교에 오시면 부끄러워 숨던 자식들 있었습니다. 길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못 본 척 피하던 자식들 있었습니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그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 때문에 "아무리 씻고 또 씻고 지워도 그대로 남아" 있는 부끄러운 상처 때문에 눈물 흘리는 자식들 있습니다. 시퍼렇게 멍든 상처 때문에 어머니가 일하시던 그 길 가까이 지나갈 수 없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환자일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는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28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5735
160 희망이란 바람의종 2012.08.01 10390
159 초록 꽃나무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23 10393
158 하루를 시작하는 '경건한 의식' 윤안젤로 2013.03.07 10402
157 화를 다스리는 응급처치법 바람의종 2012.12.07 10419
156 한 걸음 떨어져서 나를 보라 바람의종 2013.02.05 10443
155 지금 내 가슴이 뛰는 것은 風文 2015.03.11 10443
154 죽은 돈, 산 돈 風文 2014.12.07 10453
153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바람의종 2012.11.01 10465
152 한 글자만 고쳐도 바람의종 2012.12.17 10468
151 저 하늘 저 별을 보라 風文 2014.11.24 10468
150 황무지 風文 2014.12.22 10476
149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한 사람 윤안젤로 2013.04.11 10495
148 지금 이대로도 충분합니다 風文 2014.12.02 10519
147 싸이코패스(Psychopath) 인간괴물, 사법권의 테두리에서의 탄생 바람의종 2008.08.13 10521
146 외로운 노인 - A. 슈티코프 風磬 2006.11.21 10522
145 내 안의 폭군, 내 안의 천사 風文 2013.07.07 10531
144 항상 같은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바람의종 2012.10.29 10560
143 향기로운 여운 風文 2014.08.12 10580
142 뿌리와 날개 風文 2013.07.09 10616
141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87) 바람의종 2008.10.30 10616
140 자연이 주는 행복 윤안젤로 2013.05.20 10620
139 낙하산 風文 2014.10.06 10655
138 걱정하고 계시나요? 윤안젤로 2013.06.05 10696
137 비움과 채움, 채움과 비움 風文 2014.08.18 10701
136 6세에서 9세, 66세에서 99세까지 風文 2013.07.09 1070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