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5.02 11:13

젖은 꽃잎 / 도종환

조회 수 9622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젖은 꽃잎 / 도종환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대신 비가 밤새 왔다
  이 산 속에서 자랑하며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산벚나무가 환하게 꽃을 피운 연분홍 꽃그늘과
  꽃 사이 사이를 빈틈 하나 없이 파랗게 채운
  한낮의 하늘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젖은 꽃들은 진종일 소리 없이 지고
  나무는 천천히 평범한 초록 속으로
  돌아가는 걸 보며
  오후 내내 도라지 밭을 매었다
  밭을 점점이 덮은 꽃잎 흙에 묻히고
  꽃 향기도 함께 묻혔다
  그댄 지금 어느 산을 넘는지 물어볼 수도 없어
  세상은 흐리고 다시 적막하였다
  
  -「젖은 꽃잎」

  
  제 시 「젖은 꽃잎」입니다. 봄에 피었던 꽃들이 지고 있습니다. 가지 끝에 매달렸던 꽃들은 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초록으로 몸을 바꾸고 있습니다. 꽃잎도 흙에 묻히고 꽃 향기도 거기 함께 묻히는 걸 바라봅니다. 꽃이 필 때도 가슴 설레지만 꽃이 질 때는 더 가슴 떨려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붙잡을 수도 있지만 지는 꽃은 잡을 수도 없습니다.
  
  며칠만이라도 더 붙들어 두고 싶은데 그 며칠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꽃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지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꼭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꽃이 피어 있는 동안 더 가까이 가 바라보고 사랑해 주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듭니다.
  
  그대와 함께 이 꽃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그대에게 연분홍 꽃과 꽃 사이를 가득 채운 파란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대와의 인연은 멀고 꽃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꽃잎이 먼저 스스로를 버리는 날 비가 내렸고 세상은 온종일 흐리고 적막하였습니다. 어디에 계시는지요, 젖은 꽃잎 같은 그대는.




 

  1.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Date2023.02.04 By風文 Views12570
    read more
  2. 친구야 너는 아니

    Date2015.08.20 By風文 Views101989
    read more
  3. 기적을 만드는 재료들

    Date2012.07.13 By바람의종 Views9764
    Read More
  4. 숨겨진 공간

    Date2013.04.03 By윤안젤로 Views9752
    Read More
  5. TV에 애인구함 광고를 내보자

    Date2008.09.25 By바람의종 Views9746
    Read More
  6. 내 안의 절대긍정 스위치

    Date2014.11.25 By風文 Views9746
    Read More
  7.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 by 진중권

    Date2007.10.05 By바람의종 Views9735
    Read More
  8. 흙을 준비하라

    Date2014.11.24 By風文 Views9727
    Read More
  9. 사랑 협상

    Date2013.05.27 By윤안젤로 Views9725
    Read More
  10. 쉽고 명확하게!

    Date2013.05.20 By윤안젤로 Views9713
    Read More
  11.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Date2013.06.03 By윤안젤로 Views9706
    Read More
  12. 진정한 자유

    Date2012.11.06 By바람의종 Views9691
    Read More
  13. 하기 싫은 일을 위해 하루 5분을 투자해 보자

    Date2008.08.21 By바람의종 Views9683
    Read More
  14. 내 인생 내가 산다

    Date2014.08.06 By風文 Views9683
    Read More
  15. 매력있다!

    Date2013.05.27 By윤안젤로 Views9681
    Read More
  16. 무당벌레

    Date2014.12.11 By風文 Views9658
    Read More
  17. 침묵하는 법

    Date2014.12.05 By風文 Views9636
    Read More
  18. 내 마음의 꽃밭

    Date2013.03.23 By윤안젤로 Views9629
    Read More
  19. 젖은 꽃잎 / 도종환

    Date2008.05.02 By바람의종 Views9622
    Read More
  20.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Date2013.05.20 By윤안젤로 Views9600
    Read More
  21. 돌풍이 몰아치는 날

    Date2012.11.23 By바람의종 Views9586
    Read More
  22. '놀란 어린아이'처럼

    Date2012.11.27 By바람의종 Views9574
    Read More
  23. '실속 없는 과식'

    Date2013.06.28 By윤영환 Views9564
    Read More
  24. 오래 기억되는 밥상

    Date2013.05.15 By윤안젤로 Views9555
    Read More
  25. 정면으로 부딪치기

    Date2012.07.11 By바람의종 Views9543
    Read More
  26. 소를 보았다

    Date2008.04.11 By바람의종 Views9521
    Read More
  27. "여기 있다. 봐라."

    Date2014.08.11 By風文 Views950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