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292 추천 수 2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입을 여는 나무들 / 도종환




나뭇가지에 어린잎이 막 새 순을 내미는 모습은 참 예쁩니다.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앙증맞다고 해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어린 새의 부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펜촉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연초록의 부리를 내미는 어린잎들이 무어라고 재잘댈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 사월 하늘에 푸른 글씨를 쓸 것도 같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그것을 나무들이 몸의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표현합니다.
  
  
"어린 말씀들이 돋기 시작했다 / 나무들이 긴 침묵의 겨울 끝에 / 몸의 입을 열기 시작했었다 / 바람이 몇 차례 찬양의 송가를 높이고 / 봄비가 낮게 오늘의 독서를 읽고 지나가면 / 누가 막을 수 없게 / 말씀들은 성큼 자라나 잎 마다 성지를 이루었다 / 결빙의 겨울을 건너 부활한 성가족 / 의 푸른 몸들이 넓게 하늘을 받는다 / 잎마다 하늘 하나씩을 배었는지 너무 진하다 / 말씀 뚝뚝 떨어진다"
  ---「녹음미사」중에서

  
  봄 숲에 봄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성당에서 성서를 읽는 독서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나무마다 어린 나뭇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결빙의 겨울을 건너 부활한 성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새로 돋는 나뭇잎에서 부활을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봄숲에서 나뭇잎이 자라나는 모습을 "장엄한 녹음미사"라고 상상합니다.
  
  사월 나뭇잎에서 가톨릭의 미사를 떠올리는 종교적 상상도 아름답지만 부활이 그냥 오는 게 아니라 봄비처럼 쏟아지는 통회의 눈물, 통성기도의 후끈한 고백성사를 거친 뒤에 오는 것이라는 그 말씀 또한 아름답습니다. 나뭇잎들이 그렇게 부활하며 다시 태어나듯 우리도 이 사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360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2929
135 이런 인연으로 살면 안 될까요 바람의 소리 2007.09.03 10158
134 지금 시작하고, 지금 사랑하자! 바람의 소리 2007.09.03 8123
133 같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 바람의 소리 2007.08.31 8852
132 물처럼 사는것이 현명한 삶이다 1 바람의 소리 2007.08.20 6899
131 들꽃 나리 . 2007.06.26 6753
130 Gustav Klimt and the adagietto of the Mahler 5th symphony 바람의종 2008.03.27 14048
129 아버지는 누구인가? 바람의종 2008.03.19 7447
128 비닐 우산 바람의종 2008.03.19 5426
127 이거 있으세요? 바람의종 2008.03.19 8300
126 소금과 호수 바람의종 2008.03.18 7681
125 노인과 여인 바람의종 2008.03.16 6620
124 신종사기 바람의종 2008.02.15 7301
123 solomoon 의 잃어버린 사랑을 위하여(17대 대선 특별판) 바람의종 2007.12.20 8267
122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바람의 소리 2007.09.04 6899
121 찬란한 슬픔의 봄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9 8621
120 어머니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8 7226
119 어린이라는 패러다임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5 6491
118 젖은 꽃잎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5.02 9641
117 만족과 불만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4.30 5417
116 하나의 가치 바람의종 2008.04.29 6975
115 참는다는 것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4.28 8650
» 입을 여는 나무들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4.25 7292
113 섬기고 공경할 사람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4.24 7016
112 용연향과 사람의 향기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4.21 9387
111 산벚나무 / 도종환 바람의종 2008.04.18 1309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