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4.18 11:40

산벚나무 / 도종환

조회 수 13250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산벚나무 / 도종환




아직 산벚나무 꽃은 피지 않았지만
개울물 흘러내리는 소리 들으며
가지마다 살갗에 화색이 도는 게 보인다
나무는 희망에 대하여 과장하지 않았지만
절망을 만나서도 작아지지 않았다
묵묵히 그것들의 한복판을 지나왔을 뿐이다
겨울에 대하여
또는 봄이 오는 소리에 대하여
호들갑떨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경박해지지 않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요란하지 않았다
묵묵히 묵묵히 걸어갈 줄 알았다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면서*


제 시 「산벚나무」입니다. 제가 있는 산방 뒤뜰에는 산벚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봄이면 연분홍 산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는 그 산벚나무가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눈 내리고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을 묵묵히 견뎌 준 게 고마워 나는 산벚나무를 양팔로 꼭 껴안아주고 얼굴을 부빕니다.

산벚나무는 봄이 온다고 호들갑떨지 않습니다. 겨울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굴하거나 경박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고, 길이 조금만 보이면 요란을 떨거나 거만해지는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절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용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든 하찮게 여기지 말고 정확하게 응시하며 헤쳐 나가는 일이 중요하지요. 희망을 만났을 때도 원하던 것을 다 이룬 것처럼 들뜨지 말고 과욕을 경계하고 그것이 덫이 되지 않도록 삼갈 줄 아는 것도 필요합니다. 묵묵히 겨울을 견디고 아름답게 꽃피운 뒤에도 소박한 자세를 잃지 않는 산벚나무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배웁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6648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6110
2985 진득한 기다림 바람의종 2008.02.03 7288
2984 사사로움을 담을 수 있는 무한그릇 바람의종 2008.02.03 8329
2983 하늘에서 코끼리를 선물 받은 연암 박지원 바람의종 2008.02.09 14186
2982 진실한 사랑 바람의종 2008.02.11 8306
2981 어머니의 한쪽 눈 바람의종 2008.02.12 6309
2980 나는 네게 기차표를 선물하고 싶다 바람의종 2008.02.13 7918
2979 사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람의종 2008.02.14 7036
2978 신종사기 바람의종 2008.02.15 7394
2977 사랑 바람의종 2008.02.15 7795
2976 깨기 위한 금기, 긍정을 위한 부정 바람의종 2008.02.15 8876
2975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된 세계 바람의종 2008.02.16 6728
2974 안병무 '너는 가능성이다' 中 바람의종 2008.02.17 10838
2973 닥터 지바고 중 바람의종 2008.02.18 6677
2972 젊은 날의 초상 中 바람의종 2008.02.19 8183
2971 이성을 유혹하는 향수, 그 실체는? 바람의종 2008.02.19 9926
2970 사랑을 논하기에 앞서.. 바람의종 2008.02.20 6180
2969 참새와 죄수 바람의종 2008.02.21 10095
2968 테리, 아름다운 마라토너 바람의종 2008.02.22 8949
2967 <죽은 시인의 사회> 中 바람의종 2008.02.23 8678
2966 나의 아버지는 내가... 바람의종 2008.02.24 7395
2965 죽음에 대한 불안 두 가지. 바람의종 2008.02.25 7038
2964 박상우 <말무리반도> 바람의종 2008.02.27 10092
2963 엄창석,<색칠하는 여자> 바람의종 2008.02.28 11430
2962 김인숙 <거울에 관한 이야기> 바람의종 2008.02.29 11282
2961 '사랑 할 땐 별이 되고'중에서... <이해인> 바람의종 2008.03.01 758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