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9015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전화에서 들려오는 한 친구의 말은 존재로서의 언어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마치 그 친구의 전체 존재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친구와 대화를 할 때, 언제 만나자는 정보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 일종의 공동존재를 형성한다. 언어는 근본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이전에 인간을 가깝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언어는 내가 타인에게 던지는 하나의 제스처다. 나는 말로 타인과 접촉한다. 말하자면 언어는 내용 그 이전에 하나의 사건이며, 타인과 내가 함께 있다는 것, 바로 공동존재를 구축하는 길이다. 친구와 나 사이의 공동적인 존재의 형성은 말을 분석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이었던 말라르메는 화요일마다 쉬었다. 당시는 사교가 모두 살롱에서 이루어지던 시대. 말라르메의 화요모임에는 그를 추종했던 발레리나 지드도 참석했다. 이러한 후배가 들어오면 말라르메가 얘기를 했다. 그러나 증언에 의하면 사람들은 말라르메에게 감동을 받긴 했지만 사람들은 나중에 말라르메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말이 의미를 벗어나서 공동존재를 구성하는 작용에 집중된 것이다. 그게 바로 시다. 실제로 말라르메는 시가 그냥 울려 퍼지고 사라지는 음악이거나, 불꽃놀이거나, 발레리나의 움직임이기를 원했다. 또한 의미가 초과된 곳에서, 의미를 넘어선 곳에서, 이 세계의 규정화를 넘어선 곳에서 울려 퍼지고 사라지는 음악이 되기를 원했다. 말라르메에게 시의 이상적인 형태는 음악이었다.


친구와의 전화를 통한 접촉 속에서 의미를 초과하는 터치, 일종의 리듬, 어떠한 율동이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 이러한 제스처란 어떤 극단적인 상황, 말하자면 전화를 하는 등의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어떤 문화의 세계에서 자연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는 자, 즉 의식의 죽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죽음 앞에 처한 자의 제스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어떤 고통 앞에 노출된 자의 제스처가 바로 문학의 언어다. 문학의 이런 급진적이고 강렬한 제스처, 죽어가는 자의 손짓, 죽음에 다가간 자의 어떤 절규...이런 것이 없다면 문학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 제스처는 음악이 되어야 하고, 춤이 되어야 하고 거기에 문학 언어의 정상, 최고의 성취가 있다. 진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문학은 과학과 철학을 따라갈 수 없다. 문학이 추구하는 정념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텍스트 안에는 누군가의 현전이 있다. 문학의 언어는 결코 체화된 관념을 전달하는 진리의 언어, 지식의 언어가 아니다. 문학은 원초적인 생명의 제스처, 에로티즘의 제스처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5074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4467
2760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風文 2023.04.28 796
2759 공기가 좋은 숲속 길 風文 2019.08.29 797
2758 꿈도 계속 자란다 風文 2020.05.03 797
2757 다시 기뻐할 때까지 風文 2020.05.06 797
2756 금상첨화 風文 2020.05.08 797
2755 그녀가 당신을 사랑할 때 風文 2022.02.04 798
2754 아주 위험한 인생 風文 2023.09.05 799
2753 13. 아레스 風文 2023.11.10 799
2752 무한대 부드러움 風文 2020.05.15 800
2751 명인이 명인을 만든다 風文 2022.12.26 800
2750 포트폴리오 커리어 시대 風文 2023.08.09 800
2749 음악이 중풍 치료에도 좋은 이유 風文 2022.01.15 801
2748 두근두근 내 인생 中 風文 2023.05.26 801
2747 금은보화보다 더 값진 것 風文 2019.08.27 802
2746 사랑의 명언 사랑에대한좋은명언 김유나 2019.12.26 802
2745 나는 나다 風文 2020.05.02 802
2744 인생이라는 파도 風文 2022.01.29 802
2743 신에게 요청하라 3, 4, 5 風文 2022.12.01 802
2742 지혜의 눈 風文 2022.12.31 802
2741 꽃이 핀 자리 風文 2023.05.22 802
2740 오감 너머의 영감 風文 2023.06.28 802
2739 먼저 베풀어라 - 중국 설화 風文 2022.10.05 803
2738 단 하나의 차이 風文 2023.02.18 803
2737 디오뉴소스 風文 2023.08.30 803
2736 인재 발탁 風文 2022.02.13 80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