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823 추천 수 1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현대 사회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주체의 출현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당연히 철학자들에게도 커다란 관심 중의 하나였다. 일직선적 시간관에 따르면 과거를 원인으로 현재의 결과가 나타나고, 다시 현재를 원인으로 미래가 나타난다. 주체가 먼저 있고 주체의 작용으로 사건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라캉에 따르면 애초에 주체가 존재한 것이 아니다. 주체는 사후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기 세 명의 죄수가 있다. 간수 한 명이 와서 세 개의 흰 원반과, 두 개의 검은 원반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죄수들의 등에 흰 원반을 각각 하나씩 붙였다. 죄수들은 자기 등에 붙은 원반을 볼 수는 없지만, 상대방의 등에 붙은 원반이 무슨 색인지 알 수 있다. 간수는 죄수들에게 자기 등에 붙은 원반이 무슨 색인지 가장 먼저 맞춘 사람을 내보내 주겠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세 죄수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자기 등 뒤에 흰 원반이 있다고 맞출 것이다. 어떻게?


당신이 죄수 A라 가정해보자. 그리고 ‘내가 만약 검은 원반을 등 뒤에 붙이고 있다면’ 이라고 가정한다. 우선 B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등 뒤에 검은 원반이 붙어 있다고 가정하면, 죄수 C는 즉시 달려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다. 그렇다면 죄수 B의 등 뒤에는 흰 원반이 달려 있는 것이다. 다시 죄수 C의 입장에서 가정해보자. 나(죄수 A)의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고, 죄수 C의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다고 가정하면, 죄수 B는 즉시 달려 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다. 그러면 죄수 C의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다는 두 번째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죄수 C의 등 뒤에는 흰 원반이 있는 것이다. 결국 내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다는 가정에 따르면 두 죄수가 모두 스스로가 흰 원반임을 알고 달려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바로 내 등 뒤에 검은 원반이 있다는 가정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내 등 뒤에는 흰 원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적인 흐름은 죄수 상호 간의 응시-이해-결론의 순서로 진행되지만, 논리적인 흐름은 결론이 이해에 확신을 주고, 이해는 다시 응시에 확신을 주는 순서로 진행된다. 즉 내가 검은 원반을 갖고 있다는 가정(이해)이, 결론에 의해서 확신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논리적인 시간이다. 이처럼 사건이 있을 때 주체는 가장 마지막에 나올 수밖에 없다. 주체가 있기 때문에 말이 있는 게 아니라, 말이 있기 때문에 주체가 있는 것이다. 즉, 당신이 나를 꽃이라 부르는 순간 나는 당신에게 꽃이 되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15125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104571
135 단 몇 초 만의 기적 風文 2023.08.10 911
134 살아 있는 글쓰기 風文 2023.08.11 833
133 이야기가 곁길로 샐 때 風文 2023.08.14 1021
132 시간이라는 약 風文 2023.08.17 881
131 내면의 에너지 장 風文 2023.08.18 896
130 독일의 '시민 교육' 風文 2023.08.21 834
129 거울 속의 흰머리 여자 風文 2023.08.22 2103
128 살아 있음에 감사하렴 風文 2023.08.23 890
127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風文 2023.08.24 804
126 나의 인생 이야기, 고쳐 쓸 수 있다 風文 2023.08.25 886
125 80대 백발의 할머니 風文 2023.08.28 925
124 디오뉴소스 風文 2023.08.30 808
123 신묘막측한 인간의 몸 風文 2023.09.04 972
122 아주 위험한 인생 風文 2023.09.05 799
121 책을 '먹는' 독서 風文 2023.09.07 1011
120 너무 슬픈 일과 너무 기쁜 일 風文 2023.09.20 947
119 무엇이 행복일까? 風文 2023.09.20 675
118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 風文 2023.09.20 916
117 얼어붙은 바다를 쪼개는 도끼처럼 風文 2023.09.21 880
116 '건강한 감정' 표현 風文 2023.09.21 855
115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 風文 2023.09.22 904
114 운명이 바뀌는 말 風文 2023.09.22 1002
113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風文 2023.09.25 974
112 교실의 날씨 風文 2023.10.08 774
111 춤을 추는 순간 風文 2023.10.08 85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