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3.13 12:36

대학생의 독서

조회 수 6994 추천 수 2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대학생의 독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소설을 가르치다보면 느끼는 게 많다. 세대간의 차이 라기보다 차라리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듯 싶 다. 때로는 당혹감을 넘어 절망감마저 느낀다. 문화권이 다른 외국작품도 아니고, 우리 소설을 이 정도로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수 있는 것일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가령 식민지 시대나 카프 계열의 소설들, 혹은 농촌을 무대로 한 소설들에 대해 전혀 엉뚱한 해석을 내리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 어차피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어두워 그 배경이나 맥락을 읽어내기도 어려울 테고, 또 도시에서만 살아온 신세대로서는 농촌 생활 자체에 대해 전혀 무지한 까닭에 애당초 흥미도, 이해력도 부족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십여 년 안팎의 80년대 혹은 70년대의 이른바 고전이라고 할 만한 소설들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올바르게 읽어낼 줄 모르는 학생이 의외로 많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입시만능의 교육풍토에서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대학생이 된 탓이기도 하려니와 최근 우리 사회가 겪어온 변화의 진폭이 그만큼 엄청난 것이어서 신세대의 아직 미숙한 인식의 틀로서는 그 간극을 감당해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래서만일까. 한 예로 최인훈의 '광장'에서는 절박한 분단문제 를 희화화 된 상황쯤으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특수한 개인사 혹은 가족사 정도로 읽어내고, 심지어 5.18을 다룬 소설들에서는 애초에 왜 그런 '믿기 어려운'사건이 일어났는가 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조차 전혀 모르는 학생이 의외로 많다. 어쩌다 이런 현상이 생겨났을까. 물론 제도나 관습, 풍속, 문화, 정치적 입장 따위에 있어서 어느 사회에서 나 세대간 차이는 존재하고 때로 그 차이는 생산적인 추동력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나 '광장''난장이가...'이 보여주는 분단문제, 정치, 경제적 모순들의 문제, 혹은 5.18의 문제들은 결코 과거의 허상이 아니라 눈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문제다. 행여 그에 대한 신세대의 냉소나 비판이 바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기성세대는, 우리 사회는 지금 그 무지를 오히려 조장하고,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임철우의 책읽기 -대학생의 독서, 국민일보 7월9일 목요일자>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風文 2023.02.04 8604
공지 친구야 너는 아니 1 風文 2015.08.20 97873
102 나쁜 것들과 함께 살 수는 없다 風文 2022.12.29 427
101 외톨이가 아니다 風文 2023.06.01 425
100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風文 2022.02.04 424
99 56. 지성 風文 2021.10.28 423
98 한 수 아래 風文 2023.06.27 423
97 지금 아이들은... 風文 2019.08.27 422
96 길가 돌멩이의 '기분' 風文 2021.10.30 422
95 늘 옆에 있어주는 사람 風文 2022.01.28 420
94 괴테는 왜 이탈리아에 갔을까? 風文 2023.12.07 420
93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45. 미룸 風文 2021.09.06 419
92 새로운 도약 風文 2023.01.02 419
91 50. 자비 風文 2021.09.15 415
90 세월은 가고 사랑도 간다 風文 2022.12.30 415
89 빨래를 보면 다 보인다 風文 2021.09.02 412
88 놀라운 기하급수적 변화 風文 2021.10.09 411
87 번아웃 전조 風文 2021.10.30 411
86 '우리편'이 주는 상처가 더 아프다 風文 2023.02.07 410
85 53. 집중 風文 2021.10.13 407
84 59. 큰 웃음 風文 2021.11.05 407
83 낮은 자세와 겸손을 배우라 風文 2023.11.15 407
82 눈에는 눈 風文 2023.01.13 406
81 적군까지도 '우리는 하나' 風文 2021.09.06 403
80 도울 능력이 있는 자에게 요청하라 - 존 테일러 風文 2022.09.21 403
79 나 자신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風文 2022.01.28 401
78 57. 일, 숭배 風文 2021.10.30 39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 121 122 Next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