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120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니던 청바지가 버스에 앉는데 찍 하고 찢어졌다. 천을 덧대어 오버로크해서 버텼으나, 오래 못 가 뒷무릎까지 찢어졌다. 아깝더라도 버릴 수밖에.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김수영)지만, 언젠가는 버려야 할 때가 온다. 한글 자음 이름도 그렇다. 한글 창제 후 백년쯤 지나 최세진은 어린이용 한자학습서 ‘훈몽자회’를 쓴다. ‘天’이란 한자에 ‘하늘 천’이라고 적어두면 자습하기 편하겠다 싶었다. 명민한 최세진은 이름만 배워도 그것이 첫소리와 끝소리에서 어떻게 발음이 되는지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리을, 비읍’처럼 ‘이으’의 앞뒤에 ㄹ, ㅂ을 붙이면 첫소리와 끝소리를 연습할 수 있겠다. 그래서 ‘ㄹ’ 이름을 梨乙(리을), ‘ㅂ’ 이름을 非邑(비읍)이라고 지었다. 기발하고 참신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였다. ‘ㄱ’도 기윽이라 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윽’이라는 한자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발음이 비슷한 役(역)을 써서 其役(기역)이라 했다. 이런 식으로 이름 붙인 게 ㄱ, ㄷ, ㅅ 3개다. ‘ㄷ’도 디읃으로 하고 싶지만, ‘읃’이란 한자가 있을 리 없지. 末(말)이란 한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이건 뜻으로 읽으라고 해 놓았다. 옛 발음으로 ‘귿 말’이니, ‘디귿’ 되겠다. ‘ㅅ’도 時衣(시의)라 쓰고, 衣(의)에 동그라미를 쳤다. ‘옷 의’이니 시옷.

궁여지책이었다. 왜 ‘기역, 디귿, 시옷’인지 설명해 주는 선생도 드물었다. 외국인에게 가르칠 때도 이름은 슬쩍 넘어간다(그거 알려주다간 날 샌다). 남북이 함께 만드는 ‘겨레말큰사전’에는 ‘기윽, 디읃, 시읏’으로 통일했다. 어린이나 외국인에게 가르치기도 편하다. 바꿀 땐 바꿔야 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44904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91393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06556
    read more
  4. 드라이브 스루

    Date2023.12.05 By風文 Views1187
    Read More
  5. 상석

    Date2023.12.05 By風文 Views1005
    Read More
  6. 흰 백일홍?

    Date2023.11.27 By風文 Views1478
    Read More
  7. '마징가 Z'와 'DMZ'

    Date2023.11.25 By風文 Views1181
    Read More
  8. 반동과 리액션

    Date2023.11.25 By風文 Views1138
    Read More
  9. ‘개덥다’고?

    Date2023.11.24 By風文 Views1285
    Read More
  10. 내색

    Date2023.11.24 By風文 Views930
    Read More
  11. '밖에'의 띄어쓰기

    Date2023.11.22 By風文 Views1107
    Read More
  12. 몰래 요동치는 말

    Date2023.11.22 By風文 Views978
    Read More
  13. 군색한, 궁색한

    Date2023.11.21 By風文 Views1048
    Read More
  14. 주현씨가 말했다

    Date2023.11.21 By風文 Views1185
    Read More
  15. ‘가오’와 ‘간지’

    Date2023.11.20 By風文 Views1135
    Read More
  16. 까치발

    Date2023.11.20 By風文 Views1150
    Read More
  17. 쓰봉

    Date2023.11.16 By風文 Views1018
    Read More
  18. 부사, 문득

    Date2023.11.16 By風文 Views971
    Read More
  19. 저리다 / 절이다

    Date2023.11.15 By風文 Views1118
    Read More
  20. 붓다 / 붇다

    Date2023.11.15 By風文 Views1163
    Read More
  21. 후텁지근한

    Date2023.11.15 By風文 Views1213
    Read More
  22. 조의금 봉투

    Date2023.11.15 By風文 Views1127
    Read More
  23. 본정통(本町通)

    Date2023.11.14 By風文 Views1188
    Read More
  24.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Date2023.11.14 By風文 Views1204
    Read More
  25. 귀 잡수시다?

    Date2023.11.11 By風文 Views117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