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13 10:42

'김'의 예언

조회 수 130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의 예언

말은 시간과 닿아 있다. 경험과 기억이 쌓이기도 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 보게도 한다. 정신적 뼈와 살이 되는 말은 육체에 버금간다. 만져지는 말.

우리 딸은 2000년에 태어났다. 미인가 대안학교를 나온 그는 준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매 순간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사회가 미리 짜놓은 경쟁의 허들 경기에 불참하고 있다. 아비를 따라 합기도(아이키도) 수련을 하며 틈틈이 노래를 지어 부른다. 한동안 스파게티집 주방에서 종일 설거지 알바를 하더니 몇달 전부터는 채식요리(비건) 식당에 들어가서 고단한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

요즘 그는 틈나는 대로 운다. ‘김’ 때문이다. 얇고 까무잡잡한 ‘김’. 올해 봄이나 여름부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붓는다는 소식과 겹쳐 ‘김’이란 말을 뱉을 때마다, 김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그의 머릿속엔 파국적 상황이 연상되나 보다. 다시 먹지 못할 김. 어디 김뿐이랴. 오염수는 늦어도 4~5년 뒤엔 제주 밤바다에 도달한다고 한다. 국경을 모르는 물고기들은 그 전에 피폭될 테고(이미 봄비는 내렸다).

일본 시민사회와 교류하고 있는 옆방 선생이 전하기를, 일본 지인들한테서 ‘안전한’ 한국산 다시마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온다고 한다. 일본의 어느 아침 밥상에서는 ‘다시마’를 앞에 두고 우는 이들이 있나 보다.

원전 마피아들은 오염수 방류의 파국적 미래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아니, 무조건 ‘안전하다’고 떠든다. 생태에 대한 책임감을 찾을 수 없는 엘리트들보다 우리 딸의 감각이 더 믿음직스럽다. 늦지 않게 종말론적 체념의 감각을 익혀야겠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330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988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4857
3326 귀추가 주목된다 바람의종 2007.12.28 17987
3325 수뢰 바람의종 2012.12.11 17986
3324 ‘긴장’과 ‘비난수’ 바람의종 2010.03.30 17964
3323 '-화하다' / '-화시키다' 바람의종 2009.08.29 17962
3322 바람의종 2013.01.25 17901
3321 외곬, 외골수 바람의종 2012.12.03 17868
3320 비위맞추다 바람의종 2008.01.14 17823
3319 절감, 저감 바람의종 2010.01.27 17796
3318 금도(襟度) 바람의종 2012.12.10 17761
3317 시다바리, 나와바리, 당일바리 바람의종 2012.03.05 17760
3316 안하다, 못하다 바람의종 2009.02.10 17732
3315 참공약 바람의종 2012.11.21 17628
3314 입에 발린 소리 바람의종 2008.01.28 17590
3313 행랑, 행낭 바람의종 2010.05.06 17584
3312 헤라시보리 바람의종 2012.09.21 17572
3311 길다란, 기다란, 짧다랗다, 얇다랗다, 넓다랗다 바람의종 2010.07.10 17571
3310 ~데 반해 / ~데 비해 바람의종 2010.02.28 17538
3309 부득이하게? ‘부득이’면 족하다 바람의종 2010.01.14 17479
3308 신물이 나다 바람의종 2008.01.18 17463
3307 보전과 보존 바람의종 2010.11.25 17374
3306 그림의 떡, 그림에 떡 바람의종 2012.09.13 17359
3305 바이러스 바람의종 2012.12.04 1731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