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3.01 06:25

울면서 말하기

조회 수 117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울면서 말하기

울면서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나는 울면서 말을 하지 못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이 실룩거리며 울음이 목구멍에 닿으면, 하고 싶던 말을 도무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첫소리부터 컥, 하는 울음소리에 눌려 뭉개진다. 울면서 뱉은 말을 꼽아보면 ‘엄마, 아버지, 어휴, 이게 뭐야, 어떡해.’ 정도. 온전한 문장이 없다. 그러니 울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 부러울 수밖에. 울음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하는 말이니 듣는 이는 어찌 녹아내리지 않겠는가.

아직 동지를 찾지 못했다. 우는 사람한테 가서 ‘할 말이 있는데 우느라 못 하는 거냐’고 묻는 건 너무 냉정하다. 말년에 ‘말없이’ 수시로 울먹거렸던 아버지가 제일 의심스럽지만, 이게 유전적 문제인지는 영원히 미궁이다.

할 말이 있어 말을 꺼냈는데, 울음이 나와 말을 잇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가. 상대는 답답해하지만,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런 낭패도 없다. 어떤 말엔 감정의 손가락이 달려 울음의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삶에 대한 옹호,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추억 같은 것.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선, 실컷 울지도, 실컷 말하지도 못한, 다시 말해 어디 한곳에 온몸을 던져보지도, 온몸을 빼보지도 못한, 어정쩡한 삶 때문 아닐까 싶다. 힘껏 우는 근육도, 힘껏 말하는 근육도 키우지 못한 이 허약함. 있는 힘을 다해 진심을 밀어붙이는 간절함의 부족 같은 것. 울면서 말하기가 어렵다면, 슬픔이든 분노든 아픔이든 기쁨이든 온 힘을 다해 울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깟 말, 없으면 어떠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922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573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0674
3326 울과 담 바람의종 2008.01.12 7545
3325 고양이 바람의종 2008.01.12 7856
3324 서울 바람의종 2008.01.12 6453
3323 말높이기 바람의종 2008.01.13 6282
3322 맞부닥치다 바람의종 2008.01.13 7405
3321 가와 끝 바람의종 2008.01.13 6758
3320 열쇠 바람의종 2008.01.14 7885
3319 예천과 물맛 바람의종 2008.01.14 8654
3318 과거시제 바람의종 2008.01.14 8071
3317 쓸어올리다 바람의종 2008.01.15 8733
3316 그치다와 마치다 바람의종 2008.01.15 7346
3315 쇠뜨기 바람의종 2008.01.15 7154
3314 여우골과 어린이말 바람의종 2008.01.16 6642
3313 미래시제 바람의종 2008.01.16 7576
3312 물혹 바람의종 2008.01.16 5731
3311 굴레와 멍에 바람의종 2008.01.17 7577
3310 나무노래 바람의종 2008.01.17 7634
3309 압록강과 마자수 바람의종 2008.01.18 6863
3308 성별 문법 바람의종 2008.01.18 6870
3307 윽박 바람의종 2008.01.18 10227
3306 말과 글 바람의종 2008.01.19 4111
3305 며느리밥풀 바람의종 2008.01.19 596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