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1.25 10:32

반동과 리액션

조회 수 85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반동과 리액션

한국 현대사에서 ‘반동’이란 말은 혁명과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지난날 반공드라마에 흔히 쓰이던 ‘반동 종간나 ××’라는 말은 공산혁명에 반대하고 봉건질서를 옹호하는 사람에게 붙이던 경멸의 딱지였다.

하지만 애초에 ‘반동’은 자연과학(물리학) 용어였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알려진 뉴턴의 제3법칙이 대표적이다.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하면, 힘을 받는 물체도 힘을 가하는 물체의 반대 방향으로 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것이다. 정치 영역으로 확장된 ‘반동’은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방해하고, 낡고 오래되고 사라져야 할 구습을 유지하려는 모든 시도이자, 자기 이익이나 관행에 집착하는 자를 뜻하게 되었다.

‘반동’은 ‘진보’에 대한 반작용이니, 이 말을 쓰려면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의 진보란 게 뭔가. 사회적 모순의 혁파? 남북의 평화공존? 더 많은 자유와 평등? 기후정의?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생활환경? 불편하더라도 뭇 생명과 공존하는 생태적 삶? 오늘보다 나은 내일? 진보는 하나로 요약할 수 없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옅어진 시대이니, 반동이란 말도 쓰지 않는다. 반동을 뜻하는 영어 ‘리액션’을 더 많이 쓴다. ‘리액션’은 어떤 행동을 보고 취하는 반응. 박수 치고 환호성 지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맞장구치는 것. ‘좋은 소통’은 상대방의 말에 성심성의껏 리액션하는 것.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작용은 꿈도 못 꾼다. 기껏해야 리액션,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리액션. 새로운 시작보다는 반응하기, 진보보다는 안락과 안위. 반동의 시대엔 리액션이 살길인가 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37493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184046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199001
    read more
  4. 흰 백일홍?

    Date2023.11.27 By風文 Views1103
    Read More
  5. '마징가 Z'와 'DMZ'

    Date2023.11.25 By風文 Views929
    Read More
  6. 반동과 리액션

    Date2023.11.25 By風文 Views853
    Read More
  7. ‘개덥다’고?

    Date2023.11.24 By風文 Views986
    Read More
  8. 내색

    Date2023.11.24 By風文 Views729
    Read More
  9. '밖에'의 띄어쓰기

    Date2023.11.22 By風文 Views872
    Read More
  10. 몰래 요동치는 말

    Date2023.11.22 By風文 Views756
    Read More
  11. 군색한, 궁색한

    Date2023.11.21 By風文 Views820
    Read More
  12. 주현씨가 말했다

    Date2023.11.21 By風文 Views953
    Read More
  13. ‘가오’와 ‘간지’

    Date2023.11.20 By風文 Views912
    Read More
  14. 까치발

    Date2023.11.20 By風文 Views966
    Read More
  15. 쓰봉

    Date2023.11.16 By風文 Views791
    Read More
  16. 부사, 문득

    Date2023.11.16 By風文 Views760
    Read More
  17. 저리다 / 절이다

    Date2023.11.15 By風文 Views943
    Read More
  18. 붓다 / 붇다

    Date2023.11.15 By風文 Views996
    Read More
  19. 후텁지근한

    Date2023.11.15 By風文 Views898
    Read More
  20. 조의금 봉투

    Date2023.11.15 By風文 Views841
    Read More
  21. 본정통(本町通)

    Date2023.11.14 By風文 Views953
    Read More
  22.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Date2023.11.14 By風文 Views1033
    Read More
  23. 귀 잡수시다?

    Date2023.11.11 By風文 Views981
    Read More
  24. 피동형을 즐기라

    Date2023.11.11 By風文 Views824
    Read More
  25. 성적이 수치스럽다고?

    Date2023.11.10 By風文 Views1027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