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05.05 11:48

아무 - 누구

조회 수 81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무-누구

보름 전 이 자리를 통해서 “섬뜩한 느낌 주는 ‘살인 진드기’라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이후 ‘진드기’(ㅈ 일보, ㅊ 교수), ‘공포의 작명’(ㅈ 일보, ㅇ 논설위원) 등의 제목으로 비슷한 뜻을 담은 칼럼이 나왔다. 줄기는 같아도 풀어내는 방식은 달랐다. 동물생태학자와 기자답게 전공과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분석을 담아 썼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를 두고 ‘누구’라도 떠들 수 있지만 논리를 갖춰 매체에 글을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엊그제 라디오에서 ‘기미, 주근깨 따위에 효과가 있다’는 치료제 광고가 나왔다. ‘(피부 고운) 공주는 아무나…’ 하는 대목에 언어 직관을 거스르는 내용이 있었다. ‘…아무나 될 수 없지만(이 치료제를 바르면 가능하다)’이 아닌 ‘(공주는) 아무나 될 수 있다’는 문장으로 끝난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방송”이란 금언에 익숙해서였을지 모른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책’처럼 유사한 보기가 많았으니까.

‘아무(어떤 사람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르는 인칭 대명사)’는 일반적으로 ‘누구’와 뜻 차이가 없이 쓰인다. ‘나, 라도와 같은 조사와 함께 쓰일 때는 긍정의 뜻을 가진 서술어와 호응’하기도 하는 게 ‘아무’이지만 ‘흔히 부정의 뜻을 가진 서술어와 호응’(표준국어대사전)하기에 피부 치료제 광고가 낯설게 들린 것이다. <칼의 노래>를 쓴 김훈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은) 피었다’를 두고 이틀을 고민하다 ‘꽃은 피었다’로 결론 내렸다. ‘-이’는 사실을 진술한 문장, ‘-은’은 주관적인 ‘그만이 아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같은 듯 비슷한 표현도 상황에 맞춰 제대로 쓰는 게 바른 말글살이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290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948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4454
3282 풀어쓰기, 오촌 아재 風文 2022.10.08 1415
3281 댕댕이, 코로나는 여성? 風文 2022.10.07 1135
3280 위드 코로나(2), '-다’와 책임성 風文 2022.10.06 1049
3279 위드 코로나, 아이에이이에이 風文 2022.10.05 1867
3278 큰 소리, 간장하다 風文 2022.10.04 1672
3277 쳇바퀴 탈출법(1~3) 風文 2022.10.01 1983
3276 무술과 글쓰기, 아버지의 글쓰기 風文 2022.09.29 1407
3275 ‘건강한’ 페미니즘, 몸짓의 언어학 風文 2022.09.24 1420
3274 울타리 표현, 끝없는 말 風文 2022.09.23 1522
3273 역겨움에 대하여, 큰일 風文 2022.09.22 1986
3272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1189
3271 1일1농 합시다, 말과 유학생 風文 2022.09.20 1170
3270 거짓말, 말, 아닌 글자 風文 2022.09.19 1054
3269 불교, 불꽃의 비유, 백신과 책읽기 風文 2022.09.18 1073
3268 아이들의 말, 외로운 사자성어 風文 2022.09.17 1011
3267 그림과 말, 어이, 택배! 風文 2022.09.16 1251
3266 4·3과 제주어, 허버허버 風文 2022.09.15 1555
3265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風文 2022.09.14 1450
3264 ‘맞다’와 ‘맞는다’, 이름 바꾸기 風文 2022.09.11 1280
3263 맞춤법을 없애자 (3), 나만 빼고 風文 2022.09.10 1008
3262 맞춤법을 없애자, 맞춤법을 없애자 2 風文 2022.09.09 1540
3261 비계획적 방출, 주접 댓글 風文 2022.09.08 129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