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7.10.05 12:44

고려에 넣어?

조회 수 8005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고려에 넣어?

우리는 쓸모없는 말을 하면서 아픔을 덤으로 겪는다. “감안하다, 고려하다, 참작하다, 계산하다 …”들은 쓰임이 비슷하다. 말만 많을 뿐 생산성이 없다. ‘감안’(勘案)은 왜식투이니 예부터 쓰던 ‘고려·참작’으로 바꾸라고 한다. 때로는 바꿔 쓴들 뭐가 나아지랴 싶다. 물론 그런 노력에서 좀은 분별심이 생기고 말 갈피가 잡힐 터이다.

그런데, 한걸음 나아가 헤아리면 앞의 말들은 죄다 버려도 될 말이다. ‘헤아리다’면 뜻·쓰임에서 이들을 아우르는 데 모자람이 없고, 쉽고 정확한데다 말맛도 살기 때문이다. ‘살피다·셈하다·생각하다·따지다’ 들도 이에 못지 않다.

“계산에 넣다, 계산에 넣지 않다”란 말을 흔히 쓴다. 영어 익은말(take account of/ take … into account/ taking into … account/ leave out of account /leave out of considertion)을 뒤친 표현들이다.

한자말 ‘산입하다’(算入-)를 ‘셈쳐 넣다, 셈해 넣다, 셈에 넣다’로 다듬어 쓰는데, 실제로는 ‘계산에 넣다’로 많이 쓴다. 이는 한자말과 영어에 두루 가닿는 연원이 복잡한 번역투인 셈이다. 이미 버릇돼 고치기 어려운 지경이지만 ‘계산에 넣다’ 역시 “아우르다, 헤아리다’ 정도로 끝내서 아쉬울 게 없는 말이다.

“고려에 넣다, 고려에 넣지 않다”란 말도 흔히 쓰는데, ‘계산에 넣다’를 다시 뒤친 표현으로서, 무척 부자연스럽다. 이는 그냥 “고려하다, 고려하지 않다”가 낫고, 이 역시 ‘헤아리다·생각하다’로 바꿔 써야 간명하고 쉬워진다.

△환경적, 현실적 요소들을 고려에 넣지 않고 오로지 ‘돈’만을 가지고 따질 경우 → 환경이나 현실적 요소들을 헤아리지 않고 ‘돈’으로만 따진다면.
△해외 용병을 수입하는 경우,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만 하는 요소가 있다 → 외국선수를 데려올 때 반드시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이같은 상관 관계는 비만과 당뇨를 고려에 넣어도 여전히 유의미한 것으로 분석됐다 → 이런 상관 관계는 비만과 당뇨를 고려해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을 고려에 넣어 입장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 모든 것을 헤아려서 태도를 정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1994년 판결은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법률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 피고인의 행위와 그 사회적인 사실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그 규범적 요소도 고려에 넣어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 1994년 판결은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법률적 기능을 헤아리고, 피고인의 행위와 ~, 그 규범적 요소도 아울러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불법복제와 다운로드가 판치는 현실을 고려에 넣는다면, 현재 극장과 영화가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 불법복제와 내려받기가 판치는 현실을 다시 헤아린다면, ~.
△각 학파가 불교의 화엄·선 사상 등과 같은 비유교적인 사상 형태로부터 받은 영향까지 고려에 넣는다면, 차이점은 훨씬 더 커지기 마련이다 → ~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
△차 타는 시간을 계산에 넣고 여정을 짜다 → 차 타는 시간도 헤아려 여정을 짜다.
△혹 유전되었을 수도 있는 성향까지도 고려에 넣어 살펴보아야 한다 → 혹 유전되었을 수도 있는 성향도 아울러 살펴봐야 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733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388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8834
3128 탕비실 바람의종 2010.07.23 10521
3127 탓과 덕분 바람의종 2010.10.06 9720
3126 타산지석 바람의종 2010.03.10 10522
3125 클래식 바람의종 2010.03.17 12044
3124 큰 소리, 간장하다 風文 2022.10.04 1446
3123 큰 바위 바람의종 2008.02.22 7730
3122 크리스마스나무 바람의종 2008.06.02 10097
3121 크레용, 크레파스 바람의종 2009.03.29 9168
3120 퀘퀘하다, 퀴퀴하다, 쾌쾌하다 바람의종 2012.05.09 34190
3119 쿨 비즈 바람의종 2010.05.07 10688
3118 쿠테타, 앰플, 바리케이트, 카바이드 바람의종 2009.06.11 8307
3117 쿠사리 바람의종 2010.04.26 11977
3116 쿠사리 바람의종 2008.02.19 10885
3115 콩깍지가 쓰였다 / 씌였다 바람의종 2012.11.06 40664
3114 콩글리시 風文 2022.05.18 1279
3113 콧방울, 코빼기 바람의종 2009.04.14 11264
3112 코펠 바람의종 2010.03.03 12426
3111 코끼리 바람의종 2008.09.07 7515
3110 켄트지 바람의종 2009.07.23 6484
3109 커피샵 바람의종 2010.10.04 11617
3108 커브길 바람의종 2010.01.19 8296
3107 커닝 바람의종 2009.10.27 790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