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7.12.23 07:53

누다와 싸다

조회 수 7850 추천 수 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누다와 싸다

며칠 들이께 스펀지라는 티브이 방송에서 재미나는 구경을 했다. 돼지 다섯 마리를 새 우리에 넣고 똥오줌과 잠자리를 가릴지 못 가릴지 다섯 사람이 한 마리씩 맡아서 밤중까지 지켜보았다. 한 놈이 구석에다 오줌을 누자 다른 놈들이 모두 똥이나 오줌이나 그 구석에만 가서 잘 가려 누었다. 그런데 지켜보는 사람들은 돼지가 오줌이나 똥을 눌 때마다 한결같이 ‘쌌습니다!’ ‘쌌습니다!’ 했다. 박문희 선생이 유치원 아이들과 살면서 겪은 그대로였다.

“‘똥 오줌을 눈다’와 ‘똥 오줌을 싼다’를 가려 쓰지 않고 그냥 ‘싼다’로 써 버립니다. ‘똥 오줌을 눈다’는 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변기에 눈 건지 바지에 싼 건지를 가려 쓰지 않으니 가려 듣지 못합니다. 이러니 생활이 이만 저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분명히 ‘똥을 눈다. 똥을 싼다’는 말을 가려 써 왔습니다.”(박문희, ‘우리말 우리얼’ 46호)

‘누다’와 ‘싸다’는 다스림으로 가려진다. ‘누다’는 똥이든 오줌이든 스스로 잘 다스려서 내보내는 것이고, ‘싸다’는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어려서 철이 들지 않은 적에는 ‘싸고’, 자라서 철이 들면 ‘눈다.’ 철이 든 뒤에도 몸에 탈이 나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스스로 다스려 ‘누’지 못하는 수가 생기고, 그러면 ‘싸’는 수밖에 없다. 한편, 짐승의 삶이 사람과 달라서 저들은 잘 다스려 ‘누’지만 사람의 눈에 ‘싸’는 것으로 보일 수는 있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740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402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8862
3370 이중피동의 쓸모 風文 2023.11.10 1269
3369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미래를 창조하는 미래 風文 2022.05.17 1272
3368 쓰봉 風文 2023.11.16 1274
3367 24시 / 지지지난 風文 2020.05.16 1278
3366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1278
3365 비대칭적 반말, 가짜 정보 風文 2022.06.07 1279
3364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내일을 향해 모험하라 風文 2022.05.12 1284
3363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風文 2022.08.27 1284
3362 막장 발언, 연변의 인사말 風文 2022.05.25 1285
3361 언어의 혁신 風文 2021.10.14 1288
3360 언어적 도발, 겨레말큰사전 風文 2022.06.28 1288
3359 개헌을 한다면 風文 2021.10.31 1291
3358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風文 2022.06.21 1294
3357 외교관과 외국어, 백두산 전설 風文 2022.06.23 1294
3356 옹알이 風文 2021.09.03 1297
3355 올바른 명칭 風文 2022.01.09 1297
3354 사람, 동물, 언어 / 언어와 인권 風文 2022.07.13 1297
3353 내연녀와 동거인 風文 2023.04.19 1302
3352 산막이 옛길 風文 2023.11.09 1302
3351 노동과 근로, 유행어와 신조어 風文 2022.07.12 1306
3350 모호하다 / 금쪽이 風文 2023.10.11 1308
3349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130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