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4.03.27 06:22

갑질

조회 수 17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갑질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등장하는 말 중에 ‘갑질’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말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약자인 상대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갑’에 접미사 ‘질’이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보통 계약서를 쓸 때 계약의 두 당사자를 편의상 ‘갑, 을’로 칭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갑’이 된다. 이런 관습으로부터 ‘갑’에는 권력이나 지위가 높은 쪽, ‘을’에는 낮은 쪽의 의미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여기에 ‘질’이 붙어 새말이 만들어진 게 흥미롭다. ‘질’이 붙은 말은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물론 ‘가위질’이나 ‘바느질’처럼 부정적인 뜻 없이 단순히 그 도구를 사용해서 하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직업이나 직책, 또는 사람이 하는 행위에 ‘질’이 붙을 때는 그 일을 비하하거나, 또는 그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가치 평가가 덧붙는다.

비단 ‘도둑질’ ‘싸움질’ ‘고자질’ 같이 본래 나쁜 일을 가리킬 때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질’이 있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존중 받는 직업에 ‘질’이라는 접미사가 결합됨으로써 그 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낮잡는 상황에서만 쓰는 말이 돼버린다. ‘전화질’이나 ‘자랑질’도 마찬가지다. 쓸 데 없이 자주 전화를 하거나 지나치게 자랑을 많이 하는 경우를 비난하는 의미로만 쓰인다. 그런데 북한말에는 ‘질’에 그런 비하의 뜻이 없다고 한다. 새터민들 중에는 ‘선생질’을 ‘교사로서의 직분’이라는 평범한 의미로 썼다가 남한 사람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전에 없지만 ‘갑질’이란 말에는, 그런 행동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2723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927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4198
3128 지도자의 화법 風文 2022.01.15 1551
3127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중소기업 콤플렉스 風文 2022.01.13 1437
3126 주권자의 외침 風文 2022.01.13 1436
3125 마녀사냥 風文 2022.01.13 1399
3124 자백과 고백 風文 2022.01.12 1334
3123 오염된 소통 風文 2022.01.12 1421
3122 공화 정신 風文 2022.01.11 1541
3121 띄어쓰기 특례 風文 2022.01.11 1750
3120 올바른 명칭 風文 2022.01.09 1130
3119 한자를 몰라도 風文 2022.01.09 1525
3118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1184
3117 할 말과 못할 말 風文 2022.01.07 1506
3116 공적인 말하기 風文 2021.12.01 1407
3115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1230
3114 지명의 의의 風文 2021.11.15 1519
3113 유신의 추억 風文 2021.11.15 1354
3112 주어 없는 말 風文 2021.11.10 1218
3111 국민께 감사를 風文 2021.11.10 1361
3110 방언의 힘 風文 2021.11.02 1460
3109 평등을 향하여 風文 2021.11.02 1687
3108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선한 기업이 성공한다 風文 2021.10.31 1132
3107 외부인과 내부인 風文 2021.10.31 143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