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3.01 06:25

울면서 말하기

조회 수 140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울면서 말하기

울면서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나는 울면서 말을 하지 못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이 실룩거리며 울음이 목구멍에 닿으면, 하고 싶던 말을 도무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첫소리부터 컥, 하는 울음소리에 눌려 뭉개진다. 울면서 뱉은 말을 꼽아보면 ‘엄마, 아버지, 어휴, 이게 뭐야, 어떡해.’ 정도. 온전한 문장이 없다. 그러니 울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이 부러울 수밖에. 울음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하는 말이니 듣는 이는 어찌 녹아내리지 않겠는가.

아직 동지를 찾지 못했다. 우는 사람한테 가서 ‘할 말이 있는데 우느라 못 하는 거냐’고 묻는 건 너무 냉정하다. 말년에 ‘말없이’ 수시로 울먹거렸던 아버지가 제일 의심스럽지만, 이게 유전적 문제인지는 영원히 미궁이다.

할 말이 있어 말을 꺼냈는데, 울음이 나와 말을 잇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가. 상대는 답답해하지만,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런 낭패도 없다. 어떤 말엔 감정의 손가락이 달려 울음의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삶에 대한 옹호,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추억 같은 것.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선, 실컷 울지도, 실컷 말하지도 못한, 다시 말해 어디 한곳에 온몸을 던져보지도, 온몸을 빼보지도 못한, 어정쩡한 삶 때문 아닐까 싶다. 힘껏 우는 근육도, 힘껏 말하는 근육도 키우지 못한 이 허약함. 있는 힘을 다해 진심을 밀어붙이는 간절함의 부족 같은 것. 울면서 말하기가 어렵다면, 슬픔이든 분노든 아픔이든 기쁨이든 온 힘을 다해 울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깟 말, 없으면 어떠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808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475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9601
3282 동무 생각, 마실 외교 風文 2022.06.14 1414
3281 장녀, 외딸, 고명딸 風文 2023.12.21 1414
3280 예민한 ‘분’ 風文 2023.05.29 1418
3279 말의 미혹 風文 2021.10.30 1420
3278 주시경, 대칭적 소통 風文 2022.06.29 1420
3277 인종 구분 風文 2022.05.09 1421
3276 가짜와 인공 風文 2023.12.18 1421
3275 좋은 목소리 / 좋은 발음 風文 2020.05.26 1426
3274 이단, 공교롭다 風文 2022.08.07 1426
3273 피동형을 즐기라 風文 2023.11.11 1426
3272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風文 2022.06.18 1428
3271 정보와 담론, 덕담 風文 2022.06.15 1430
3270 아주버님, 처남댁 風文 2024.01.02 1430
3269 외래어의 된소리 風文 2022.01.28 1431
3268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1434
3267 붓다 / 붇다 風文 2023.11.15 1435
3266 영어 열등감, 몸에 닿는 단위 風文 2022.04.27 1437
3265 왕의 화병 風文 2023.11.09 1437
3264 본정통(本町通) 風文 2023.11.14 1437
3263 내일러 風文 2024.01.03 1437
3262 김 여사 風文 2023.05.31 1438
3261 마그나 카르타 風文 2022.05.10 143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