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12.26 07:23

○○노조

조회 수 98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노조

굳은살은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말이 굳으면 대상을 별생각 없이 일정한 이미지로 자동 해석하게 한다. 한국 사회의 반노동 반노조 정서는 말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노조’라는 단어를 읊조려 보라.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나? ‘머리띠, 구호, 삭발, 파업’이 아닌, ‘친구, 맞잡은 손, 비를 피할 큰 우산’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노조’의 빈자리를 채우는 말을 떠올려 보라. 예전엔 ‘어용노조, 민주노조’ 정도였다면, 지금은 ‘강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말이 떠오른다. 최근엔 ‘부패노조’라는 표현도 등장. 진실을 감추고 선입견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말들이다.

‘귀족노조’라는 말은 의미가 이중적인 만큼 효과가 좋다. 이 말은 월급과 복지가 좋은 일부 대기업 노조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노조 전체를 특권층으로 싸잡아 매도할 수도 있다(영어의 ‘노동 귀족’(labor aristocracy)이란 말은 특권화되고 보수화된 노조 간부를 뜻한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도 노조가 있으면 무조건 ‘귀족노조’다. 노조를 꿈도 못 꾸는 노동자들에겐 노조 자체가 부러움과 상실감의 대상이다.

말은 투쟁만큼 중요하다. 정부와 언론의 악의적 선동이 넘치지만, 우리도 새로운 말을 발명해야 한다. 마치 칫솔처럼, 손난로처럼, 이불처럼 가깝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수식어를 찾아내어 꾸준히 써야 한다. 그러니, 송년 모임에 가는 차 안에서라도 ‘노조’의 꾸밈말로 어떤 게 좋을지 생각해 봄이 어떨까. 나는 아직까진 문장 하나만 생각날 뿐. ‘노조는 부패한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998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655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1567
3322 통틀어 바람의종 2007.03.30 7162
3321 퉁맞다 바람의종 2007.03.30 7949
3320 푼돈 바람의종 2007.03.31 8585
3319 바람의종 2007.03.31 8243
3318 하루살이 바람의종 2007.04.01 9385
3317 하염없다 바람의종 2007.04.01 10741
3316 한눈팔다 바람의종 2007.04.02 11996
3315 한 손 바람의종 2007.04.02 10705
3314 한참동안 바람의종 2007.04.23 8895
3313 한통속 바람의종 2007.04.23 6286
3312 할망구 바람의종 2007.04.24 11061
3311 핫바지 바람의종 2007.04.24 8075
3310 행길 바람의종 2007.04.25 11126
3309 허풍선이 바람의종 2007.04.25 7686
3308 불구하고?/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5 10430
3307 ‘경우’ 덜쓰기/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5 6842
3306 관해/대하여/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5 5953
3305 호래자식(후레자식) 바람의종 2007.04.27 14485
3304 홀몸 바람의종 2007.04.27 9361
3303 가관이다 바람의종 2007.04.28 12644
3302 가차없다 바람의종 2007.04.28 10428
3301 위하여/최인호 바람의종 2007.04.28 693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