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12.19 07:15

구경꾼의 말

조회 수 10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구경꾼의 말

녹사평역 3번 출구. 스산한 바람이 뒹굴고 무심한 차들이 질주하는 고갯마루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있다. 바로 곁에 “정치 선동꾼 물러나라”라는 펼침막을 붙인 봉고차 한대. 이 어색한 밀착의 공간을 서성거린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주변을 배회하는 구경꾼들이 있다. 사건을 관망하면서 말을 끄집어내는 구경꾼들의 입은 당사자만큼이나 중요하다. 권력자들을 떨게 만드는 건 구경꾼들의 예측할 수 없는 의지와 결집이니.

8년 전.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이었던 유경근씨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들의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이다. 이것을 정말 듣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희생자 가족들은 그 ‘부질없는 말’을 정말 듣고 싶어 한다.

권력자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듯. 그들이 입을 닫으니 반동들이 입을 연다. 예전보다 더 빠르고 악랄하고 노골적이다. 권력자들은 반동의 무리들이 반갑다. 구경꾼들을 당사자들과 분리시키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될 테니.

그러니 말을 믿지 말자. 권력자의 말을 믿지 말자. 그들이 하지 않은 말도 믿지 말자. 뉴스를 믿지 말자. 신문에 기사화된 분노를 믿지 말자. 그 분노는 애초에 우리의 심장 속에 있었다. 대중매체가 훔쳐 간 것이다. 휴대폰만 쳐다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능욕하는 막말도 의견인 양 같은 무게로 읽힌다. 그러니 우리의 감각을 믿지 말자. 우리의 무감각도 믿지 말자. 우리에게 절실한 건 ‘가서 보는 것’. 참사를 만져보는 것. 목격자로서 말을 하는 것.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995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652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1515
3322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882
3321 사람, 동물, 언어 / 언어와 인권 風文 2022.07.13 884
3320 ‘끄물끄물’ ‘꾸물꾸물’ 風文 2024.02.21 886
3319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887
3318 내연녀와 동거인 風文 2023.04.19 887
3317 물타기 어휘, 개념 경쟁 風文 2022.06.26 888
3316 동무 생각, 마실 외교 風文 2022.06.14 890
3315 연말용 상투어 風文 2022.01.25 891
3314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風文 2022.06.21 891
3313 외교관과 외국어, 백두산 전설 風文 2022.06.23 891
3312 혁신의 의미, 말과 폭력 風文 2022.06.20 895
3311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895
3310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896
3309 피동형을 즐기라 風文 2023.11.11 897
3308 대명사의 탈출 風文 2021.09.02 899
3307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899
3306 ‘요새’와 ‘금세’ 風文 2024.02.18 900
3305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902
3304 뒷담화 보도, 교각살우 風文 2022.06.27 903
3303 시간에 쫓기다, 차별금지법과 말 風文 2022.09.05 903
3302 모호하다 / 금쪽이 風文 2023.10.11 903
3301 금수저 흙수저 風文 2024.02.08 90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