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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재다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담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기’는 담지 못한다. 카메라를 개미에 바짝 붙여 찍으면 코끼리보다 크고, 코끼리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찍으면 개미보다 작게 보인다. 그래서 범죄 현장에서 찾은 증거물은 항상 자를 옆에 놓고 찍는다.

세상 모든 척도가 미터와 그램, 리터로 통일된 듯하다. ‘배럴, 갤런, 파운드’처럼 낯선 단위를 만나면 가늠이 되지 않는 걸 보면 더 그렇다(허리둘레나 텔레비전 크기를 말할 땐 ‘인치’를, 골프에선 ‘야드’를 쓰긴 하더라…).

그러나 미터법과 같은 보편적인 척도를 배우기 전에도 우리는 이 세계를 ‘쟀다’. 그 기준은 몸이다. 새로 난 떡잎은 손톱만 하고, 복숭아는 어른 주먹만 하며, 가지는 팔뚝만 하고, 호박은 머리통만 하다고 한다. 아이스크림 한 ‘입’에 얼음물 한 ‘모금’만 마실 수 있다면 이 더위를 식힐 수 있으련만. ‘뼘’은 엄지손가락과 집게나 새끼손가락을 힘껏 벌려 잰 길이이고, ‘움큼’이나 ‘줌’은 주먹으로 쥘 만한 양이다. ‘아름’은 두 팔을 벌려 안을 수 있는 분량이고, 아무도 모른다는 ‘한 길 사람 속’에 쓰인 ‘길’은 한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 ‘한 평’이면 사람이 얌전히 누울 정도의 넓이. ‘세 치 혀’에 쓰인 ‘치’나 영어 ‘인치’는 모두 손가락의 길이나 굵기에서 왔다.

몸으로 이 세계를 재는 민속적 척도는 뒷방 늙은이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쓰인다. 세월의 간극에서 오는 해석과 시선의 공존은 얼마나 반갑고 흥미로운가. 말을 포함해 세대차는 나면 날수록 좋다. 세대차 자체보다는 그걸 못 견뎌 하는 풍토가 문제일 뿐.


윙크와 무시

누구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싶어한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로 말솜씨는 고작 7%에 불과하다. 나머지 93%는 몸짓이나 목소리가 좌우한다(메라비언의 법칙). 언어보다 비언어적인 요소가 결정적이란 뜻이다.

눈으로 보내는 메시지 중에 상반된 두 가지가 있다. 윙크와 무시. ‘윙크’는 매우 독특하다. 생리적 반응인 눈 깜박거림과 달리, 일부러 한쪽 눈만 감는 윙크는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녹아 있다. 그만큼 작위적이다. 윙크는 뭘 뜻할까? 친밀감의 표시? 추파? 비밀스러운 약속에 대한 확인? 어떤 사안이 그리 심각한 게 아니니 안심하라는 표시?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겠지만, 그 내밀함은 유지된다.

반면에 ‘무시’라는 말은 ‘보지 않음(無-視)’으로써 ‘업신여김, 깔봄, 신경 안 씀’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전달한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이 들게 하다니 얼마나 강력한 신호인가. 그런데 오해 마시라. 누군가를 ‘쳐다보는’ 일은 의외로 드물게 일어난다. 우리 눈은 온종일 뭔가를 바삐 보지만, 눈길을 주고받는 경우는 드물다. 눈은 인간의 내면이 드러나는 통로인지라, 그 내면을 엿보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모르는 사람의 눈을 5초 이상 쳐다보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뭘 쳐다봐!’ 하면서 다툼이 생길 거다.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 때는, 눈길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이가 그러지 않았을 때다. 사이가 틀어졌거나 대등한 관계가 아닐 때다.

윙크와 무시 모두 의도적인 행동이다. ‘노룩 악수’로 무시당했다면, 다음번엔 윙크로 ‘선빵’을 날려 보시라.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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