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25 14:04

연말용 상투어

조회 수 90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연말용 상투어

늘 쓰는 말 가운데 상투어가 있다. 단어 낱낱의 뜻과 관계없이 습관처럼 입에 익어서 사용하는 말들이다.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반가워하며 “그렇잖아도 연락 한번 드리려고 했는데…” 같은 말들은 그 문장 내용의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만 하면 충분하다. 상당히 많은 상투어가 이렇게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말들이다.

상투어는 대개 일정하게 ‘정형화된 상황’을 계기로 삼아 사용된다. 보통 결혼식, 장례식, 축하 모임, 문안 인사 등이 상투어 사용의 계기들이다. 상투어는 진부한 부분도 있지만, 지나치게 세세하고 복잡한 언어적 묘사와 서술을 줄여주는 무척 요긴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투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매 순간 독특하고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몹시 피곤했을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상황’에도 상투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말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아마도 ‘다사다난한 올해를…’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일도 많고 탈도 많은’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런 뜻보다는 올해도 수고 많았다는 인사처럼 쓰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턴가 왠지 이 말이 품은 심각하고 진지한 의미가 살아나며 부담스러워졌다. 단순한 상투어가 아니라 괜히 이런 말을 방정맞게 자주 사용해서 궂은일이 자꾸 터지는 것 같은 꺼림칙함 말이다.

특히 지난해는 정치적으로 국민들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번잡스러웠다. 뜻을 모아 마음을 함께하는 일이 보람도 있었지만 무척 힘들고 피곤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진정 원래의 단어 뜻 그대로 ‘다사다난’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에는 그동안의 온갖 적폐를 속시원히 털어내고 다음 연말은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정말 마음 가벼운 상투어로만 사용했으면 한다.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33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687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1892
3146 좌익 바람의종 2007.08.20 6572
3145 지양 바람의종 2007.08.20 9906
3144 지척 바람의종 2007.08.21 6732
3143 지하철 바람의종 2007.08.21 7966
3142 지향 바람의종 2007.08.22 6559
3141 질곡 바람의종 2007.08.22 7946
3140 질풍, 강풍, 폭풍, 태풍 바람의종 2007.08.23 8441
3139 차례 바람의종 2007.08.23 6555
3138 청사 바람의종 2007.08.24 5866
3137 청사진 바람의종 2007.08.24 7654
3136 청신호 바람의종 2007.08.30 7592
3135 초미 바람의종 2007.08.30 8558
3134 추파 바람의종 2007.08.31 11086
3133 퇴짜 바람의종 2007.08.31 10056
3132 배제하다?/최인호 바람의종 2007.08.31 8829
3131 우리말의 참된 가치 / 권재일 바람의종 2007.08.31 12946
3130 아사리판 / 한용운 바람의종 2007.08.31 11287
3129 속과 안은 다르다 / 김수업 바람의종 2007.08.31 8305
3128 파경 바람의종 2007.09.01 10867
3127 파국 바람의종 2007.09.01 8760
3126 파천황 바람의종 2007.09.04 9617
3125 파투 바람의종 2007.09.04 963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