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9.02 22:56

언어 경찰

조회 수 96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언어 경찰

상상을 한번 해보자. 만일 언어 경찰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항상 바른 말과 고운 말만 쓰고, 욕설 같은 것은 입에 담지 않는 낙원이 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정확한 표준 발음과 맞춤법만 사용하도록 계도한다면 모범적인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그럴듯하게도 들리겠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보통사람들한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언어 사용에 대해 검토와 평가를 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방송 언어를 점검하고 경우에 따라 제재를 가하는 기관이다. 특히 지상파 방송의 경우는 혹시 윤리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문제 있는 언어를 사용했을 경우에 부담스러운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교육이나 시사에 관한 방송에서는 언어 사용을 올바르게 하도록 지도한다는 것이 필요도 하고 의미도 있겠지만, 오락 프로는 좀 경우가 다르다. 자칫하면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일이 생기기 쉽다. 어찌 오락 프로에서 정확한 발음과 전형적인 의미만 사용할 수 있겠는가. 장난으로라도 비틀고 꼬아놓고 희롱하는 것이 인간의 유희 아닌가.

그러다 보니 '핳핳핳’처럼 장난에 가까운 자막에 대해서도 주의를 주기도 하고, “ㅋㅋㅋ”도 문제를 삼아 방송국 쪽에서 모음 글자를 뒤늦게 넣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의 맞춤법은 원래 공식적인 문장 활동에 주로 적용하려고 만든 규약이지 모든 사람의 삶 전반을 단속하는 것이 그 목적은 아니다. 방송 중에 짓궂거나 좀 주책스런 표현을 한 것을 미주알고주알 모두 문제 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언어는 성스러운 면도 있지만 개구쟁이 같은 면도 있다. 언어에 대한 단속과 규제는 ‘구체적인 해악’이 드러나는 부분에만 한정해야지, 실오라기 같은 실수나 장난도 용납을 못하는 근엄함은 언어의 그 풍부한 기능을 왜소하고 옹졸하게 해석하는 일이다. 속상한 일이 많을 때는 웃고도 살아야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427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0904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5792
3370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風文 2022.08.27 1196
3369 고양이 살해, 최순실의 옥중수기 風文 2022.08.18 1199
3368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내일을 향해 모험하라 風文 2022.05.12 1202
3367 막장 발언, 연변의 인사말 風文 2022.05.25 1203
3366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미래를 창조하는 미래 風文 2022.05.17 1204
3365 언어적 도발, 겨레말큰사전 風文 2022.06.28 1204
3364 올바른 명칭 風文 2022.01.09 1207
3363 언어와 인권 風文 2021.10.28 1209
3362 소통과 삐딱함 風文 2021.10.30 1209
3361 속담 순화, 파격과 상식 風文 2022.06.08 1210
3360 쓰봉 風文 2023.11.16 1211
3359 비대칭적 반말, 가짜 정보 風文 2022.06.07 1213
3358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風文 2022.06.21 1213
3357 올해엔 저지른다, ‘죄송하지만’ 風文 2022.08.04 1214
3356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1215
3355 사람, 동물, 언어 / 언어와 인권 風文 2022.07.13 1216
3354 1일1농 합시다, 말과 유학생 風文 2022.09.20 1216
3353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1217
3352 개헌을 한다면 風文 2021.10.31 1219
3351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1219
3350 ‘내 부인’이 돼 달라고? 風文 2023.11.01 1219
3349 “이 와중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께” 風文 2023.12.30 122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