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4.12.30 04:56

간판 문맹

조회 수 2439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간판 문맹

“제가 모시는 여러 신 중에는 ‘소 신’과 ‘새우 신’이 있습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사람을 위해 온전히 바치어 주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찾은 일본풍 선술집 점원이 장난기 섞인 웃음과 함께 새우튀김을 내놓으며 한 말이다. 종업원의 재치있는 말 한마디가 자리를 환하게 빛내주었다. 그 집에 손님이 많은 것이 음식과 분위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맛깔스런 음식에 아기자기한 실내장식, 종업원의 친절과 재치가 돋보이는 그 집의 이모저모가 좌중의 화제에서 빠지지 않은 걸 봐도 그렇다. 모든 게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이 집 찾기 참 힘들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 집에 초행이었던 네 명이 모두 그랬다. 이유는 하나였다. 가게 간판 찾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흰색 네모꼴 간판에는 큼지막한 일본어와 그 아래 작게 쓴 영어만 적혀 있었으니 그럴 만했다. 자리 파하고 나와 그 동네를 둘러보니 한글 없이 외국어로만 쓴 간판이 새삼 눈에 많이 들어왔다. 옷가게와 커피숍, 아이스크림 전문점, 빵집 등은 영어로만 쓴 간판이 오히려 많았다. ‘세계 공용어’ 대접을 받는 영어는 접어두더라도 언제부터인가 부쩍 늘어난 일본어 간판 앞에서 ‘문맹’이 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우리뿐이 아닐 것이다.

중국은 소수민족 자치주에 거주민족 문자 표기를 의무화했다. 연변에서는 ‘한글(조선어)과 한자(중문)를 병기하되 한글을 먼저 표기’해야 한다. 프랑스어권인 캐나다 퀘벡주는 간판에 프랑스어 표기를 하지 않은 업주에게 강력한 행정처벌을 내린다. 관급공사 수주 자격을 박탈하고 고액의 벌금을 매기며 연속 적발될 경우 가중 처벌하는 것이다. 간판은 공공디자인이고 그에 담긴 언어는 공공성을 띤다. ‘한글 간판의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 까닭, ‘한글 간판 의무화 법 제정’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간판 문맹’을 없애자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251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904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4015
3150 짬이 나다 바람의종 2008.01.30 14091
3149 제비초리 바람의종 2007.03.23 14090
3148 눌은밥, 누른밥, 누룽지 / 눌어붙다, 눌러붙다 바람의종 2009.05.28 14088
3147 늘상, 노상, 천상, 천생 바람의종 2009.11.03 14070
3146 진안주 바람의종 2010.10.30 14068
3145 북한의 국화는 목란꽃 바람의종 2010.01.18 14063
3144 우려먹다(울궈먹다) 바람의종 2007.03.03 14052
3143 자문을 구하다? 바람의종 2010.05.05 14039
3142 도매급으로 넘기다 바람의종 2010.04.24 14031
3141 이녁 바람의종 2007.03.15 14029
3140 여보 바람의종 2010.07.05 14022
3139 학부모 / 학부형 바람의종 2010.09.29 13989
3138 응큼, 엉큼, 앙큼 바람의종 2010.01.14 13978
3137 금세, 금새 / 여태, 입때 / 늘상, 항상 바람의종 2008.12.15 13977
3136 참고와 참조 바람의종 2010.08.03 13945
3135 쌍거풀, 쌍가풀, 쌍꺼풀, 쌍까풀 바람의종 2012.07.27 13942
3134 히읗불규칙활용 바람의종 2010.10.21 13913
3133 쪼달리다, 쪼들리다 / 바둥바둥, 바동바동 바람의종 2012.09.27 13903
3132 안정화시키다 바람의종 2012.04.23 13902
3131 폭발, 폭팔, 폭파시키다 바람의종 2010.02.25 13895
3130 입추의 여지가 없다 바람의종 2008.01.28 13880
3129 늑장, 늦장/터뜨리다, 터트리다/가뭄, 가물 바람의종 2008.12.27 1387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