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03.27 16:42

봄날은 온다

조회 수 1972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봄날은 온다

오래전 어느 뉴스에 ‘하천 전투기’가 등장한 적이 있다.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1964년부터 1976년까지 562대를 생산한 이 전투기의 본명은 ‘F111’이다. 멀쩡한 제 이름 두고 다른 것으로 방송 전파를 탄 까닭은 엉뚱한 데 있었다. 뉴스를 전한 아나운서가 로마자 ‘F’(에프)와 숫자 ‘111’을 한자 ‘下川’(하천)으로 오독한 것이다. 육필 원고가 대부분이던, 한자를 섞어 갈겨써 ‘해독’이 필요했던 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춘래불이춘’이라 구성지게 읊은 방송인도 있었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胡地無花草)/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네(春來不似春)’의 ‘似’(같을 사)를 ‘以’(써 이)로 잘못 보았기 때문이었다.

‘춘래불사춘’이라 하지만 입춘이 지났으니 봄의 문턱이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봄’을 만났다. 슈만의 ‘봄’은 트럼펫으로 봄의 열망을 드러내며 씩씩하게 시작했고, 바이올린 선율로 새들의 지저귐을 담아낸 비발디의 ‘봄’은 싱그러움으로 빛났다. 흔히 봄을 ‘여인의 계절’이라 하지만 봄날의 여인이 아름답게만 읽히는 것은 아니다. 손로원의 노랫말에 박시춘이 가락을 입혀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의 ‘연분홍 치마’는 왠지 처연하고, ‘씹어 무는 옷고름’은 봄날 보내는 이의 절절함을 더한다. 이은상이 노래한 ‘봄 처녀’에는 ‘새 풀 옷 입고’ 날갯짓하는 ‘봄처녀나비’의 팔랑거림이 ‘하얀 구름 너울’에 겹쳐 보이는 듯하다.

봄의 ‘말밭’에는 여느 계절에 없는 게 있다. ‘봄을 맞아 이성 관계로 들뜨는 마음이나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봄바람이 본보기이다. 그저 부는 바람인 가을(겨울)바람과 다른 것이다. 봄기운, 봄나들이, 봄노래, 봄놀이, 봄맛, 봄소식 따위도 다른 철에는 나타나지 않는 조어다. 방 한쪽의 매화가 수줍은 듯 하얗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러고 보니 오는 월요일은 우수다. 때는 바야흐로 봄, 봄날은 온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932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5843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0767
3366 고양이 살해, 최순실의 옥중수기 風文 2022.08.18 796
3365 사과의 법칙, ‘5·18’이라는 말 風文 2022.08.16 800
3364 ‘며칠’과 ‘몇 일’ 風文 2023.12.28 801
3363 속담 순화, 파격과 상식 風文 2022.06.08 805
3362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선한 기업이 성공한다 風文 2021.10.31 806
3361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風文 2024.02.17 806
3360 권력의 용어 風文 2022.02.10 809
3359 짧아져도 완벽해, “999 대 1” 風文 2022.08.27 809
3358 몰래 요동치는 말 風文 2023.11.22 809
3357 올림픽 담론, 분단의 어휘 風文 2022.05.31 811
3356 애정하다, 예쁜 말은 없다 風文 2022.07.28 814
3355 치욕의 언어 風文 2021.09.06 819
3354 영어의 힘 風文 2022.05.12 820
3353 안녕히, ‘~고 말했다’ 風文 2022.10.11 820
3352 올바른 명칭 風文 2022.01.09 824
3351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이제 '본전생각' 좀 버립시다 風文 2022.02.06 824
3350 배레나룻 風文 2024.02.18 825
3349 온실과 야생, 학교, 의미의 반사 風文 2022.09.01 827
3348 인과와 편향, 같잖다 風文 2022.10.10 828
3347 '김'의 예언 風文 2023.04.13 830
3346 온나인? 올라인? 風文 2024.03.26 830
3345 마그나 카르타 風文 2022.05.10 83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