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2.07.23 10:31

해장

조회 수 13409 추천 수 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해장

‘장학퀴즈’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20주년 특집’을 만들기 위해 찾아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한-중 수교 직후였기에 홍콩과 베이징을 거쳐 한참을 에둘러 가야 했다.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칼바람 부는 하얼빈에서 ‘중국 인민’인 재중동포를 출연자와 방청객으로 모시고 진행한 ‘장학퀴즈 20주년 특집’ 제작은 쉽지 않았다. 방송 환경은 열악했고 무엇보다 ‘남쪽 말’과 ‘북쪽 말’의 미묘한 차이를 헤아려야 했다. 그들은 ‘퀴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여했다. “‘퀴즈’가 뭔가 했더니 ‘유희’구먼요….” 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한숨 돌릴 즈음 출연 학생이 툭 내뱉은 한마디였다.

그럴듯한 ‘번역’이었다. ‘퀴즈’는 놀이하듯 풀어가며 뭔가를 알아가는 ‘유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에 ‘(역사극에 나오는) 사약은 무엇인가’ 묻는 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먹으면 죽는 약’(死藥)이 아닌 ‘임금이 하사한 약’(賜藥)이다. 이처럼 뜻이 헷갈리는 문제를 또 낸다면 ‘노점’을 출제할 수 있겠다. ‘노점’(路店)이라 지레짐작하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길가의 한데에 물건을 벌여 놓고 장사하는 곳’(표준국어대사전)은 ‘노점’(露店)이다. ‘길’(路)이 아닌 ‘이슬’(露)인 까닭은 노천점포(露天店鋪), 그러니까 ‘한데(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에 차린 가게’여서 그렇다.

노점을 ‘거리 가게’, ‘길 가게’로 다듬은 국립국어원의 순화안은 생뚱맞다. ‘노천’의 뜻을 헤아리지 않은 순화어이기 때문이다. ‘국어 순화’의 순화는 순수하게 하는 순화(純化)가 아니라, 잡스러운 것을 걸러내는 순화(醇化)이다. 술꾼과 뗄 수 없는 ‘해장’도 제 뜻 가늠해 쓰는 이 많지 않다. ‘창자(腸)를 풂’이 아닌 ‘숙취(?)를 풂’에서 온 말이 ‘해장’이다. 국어사전은 원말 ‘해정’(解<9172>)의 음이 변해 ‘해장’이 된 것으로 밝혀 놓았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0146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669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1653
3326 사람, 동물, 언어 / 언어와 인권 風文 2022.07.13 1159
3325 내연녀와 동거인 風文 2023.04.19 1159
3324 주어 없는 말 風文 2021.11.10 1160
3323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1161
3322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이제 '본전생각' 좀 버립시다 風文 2022.02.06 1166
3321 말과 절제, 방향과 방위 風文 2022.07.06 1166
3320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1166
3319 모호하다 / 금쪽이 風文 2023.10.11 1166
3318 왜 벌써 절망합니까 - 벤처대부는 나의 소망 風文 2022.05.26 1167
3317 '-시키다’ 風文 2023.12.22 1168
3316 말의 이중성, 하나 마나 한 말 風文 2022.07.25 1169
3315 한 두름, 한 손 風文 2024.01.02 1171
3314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風文 2022.08.23 1175
3313 말의 세대 차 風文 2023.02.01 1175
3312 노동과 근로, 유행어와 신조어 風文 2022.07.12 1176
3311 그림과 말, 어이, 택배! 風文 2022.09.16 1177
3310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風文 2022.02.24 1178
3309 주시경, 대칭적 소통 風文 2022.06.29 1178
3308 상석 風文 2023.12.05 1178
3307 내일러 風文 2024.01.03 1178
3306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1182
3305 다만, 다만, 다만, 뒷담화 風文 2022.09.07 118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