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1.27 15:33

개차산과 죽산

조회 수 9187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개차산과 죽산

경기도 안성 이죽면의 옛이름은 ‘개산’ 또는 ‘개차산’이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개산군은 본래 고구려 개차산군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바꾸었으며, 고려 때는 죽산(竹山)이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사실은 죽산의 옛이름으로 ‘개차’라는 말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개차’라는 말은 본래 ‘임금’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는 행주(幸州)의 옛이름인 ‘개백’에서도 확인된다. 행주는 본디 고구려 개백현(皆伯縣)이었는데 우왕현(遇王縣)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행주로 바뀐 땅이름이다. 이 ‘개백’은 한자 ‘왕’(王)과 대응되며, ‘개차’(옛음은 ‘가이지’)는 ‘대’[죽]와 대응된다. 땅이름 표기는 토박이말 단어의 첫음절을 한자음으로 쓰거나 그 말에 해당하는 한자를 찾아 맞옮긴다. 이런 원리에 따라 ‘개백’을 ‘왕’으로 옮겼고, ‘개차’는 ‘대’로 옮긴 셈이다. 한자 ‘대’는 큰 것뿐만 아니라 왕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 역사서인 <주서> 이역전 백제조에는 “왕의 성은 부여씨로 어라하라 불렀으며, 백성들은 건길지라 불렀는데, 중국말로는 왕이란 뜻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건길지’는 ‘건’과 ‘길지’로 이루어진 말이다. ‘건’은 몽골어 ‘칸’에 해당하며, ‘길지’는 ‘개차’와 마찬가지로 임금에 해당한다.

‘개차산’이 ‘죽산’이 된 것은 토박이말이 한자말로 바뀌는 과정과 관련이 있을 뿐 한자가 뜻하는 ‘대나무’와는 무관하다. 이처럼 땅이름 변화에는 우리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경우가 많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503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1163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6353
158 예민한 ‘분’ 風文 2023.05.29 1565
157 정보와 담론, 덕담 風文 2022.06.15 1564
156 깨알 글씨, 할 말과 못할 말 風文 2022.06.22 1564
155 그림과 말, 어이, 택배! 風文 2022.09.16 1564
154 말과 절제, 방향과 방위 風文 2022.07.06 1560
153 ‘짝퉁’ 시인 되기, ‘짝퉁’ 철학자 되기 風文 2022.07.16 1560
152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1560
151 말의 미혹 風文 2021.10.30 1559
150 영어 열등감, 몸에 닿는 단위 風文 2022.04.27 1559
149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風文 2022.02.24 1558
148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1556
147 지슬 風文 2020.04.29 1555
146 살인 진드기 風文 2020.05.02 1555
145 올가을 첫눈 / 김치 風文 2020.05.20 1555
144 경평 축구, 말과 동작 風文 2022.06.01 1555
143 “이 와중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께” 風文 2023.12.30 1555
142 인종 구분 風文 2022.05.09 1553
141 상석 風文 2023.12.05 1552
140 1일1농 합시다, 말과 유학생 風文 2022.09.20 1549
139 일본이 한글 통일?, 타인을 중심에 風文 2022.07.22 1547
138 날씨와 인사 風文 2022.05.23 1546
137 공공언어의 주인, 언어학자는 빠져! 風文 2022.07.27 154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