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2.01 18:58

공적인 말하기

조회 수 149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공적인 말하기

어떤 모임에 가보면 사회자의 첫인사가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하구요, 곧이어 회장님의 개회사가 있겠습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요’라는 어미는 존대의 기능을 하는 것이고, 감사하다는 말과 개회사가 있겠다는 말이 ‘-고’라는 연결어미를 통해 이어진 것이다.

 ‘-고’라는 어미가 무척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표현은 매우 기이하다. ‘-고’로 두 홑문장을 연결하려면 그 두 서술어 사이에 일정한 의미 관계 혹은 기능 관계가 있어야 한다. 동작의 순서이든지, 수단이나 상태를 가리키든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감사하다’와 ‘개회사가 있겠다’의 경우는 그러한 관계가 안 나타난다. 흔히 ‘반갑구요’라든지 ‘죄송하구요’와 같은 말들이 이런 현상을 이끌어낸다.

‘감사하다’나 ‘반갑다’가 이런 식으로 연결되면 그 의미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감사한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고 그다음의 말에 희석이 되어 버린다. 미루어 생각해 보건대 사사로이 감사를 표해 본 적은 있어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곧 ‘낯선 공중’을 향하여 ‘공적인 감사’를 표해 본 경험이 부족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사적으로는 거두절미하고 감사하다고만 해도 그리 욕될 것이 없다. 그러나 공적인 감사에는 분명한 ‘공적인 명분’을 명시해야 한다. 먼저 공적으로 왜 이런 활동이나 행위가 의미 있는 것인지를 해석해 내고 나서 그에 합당한 (감사의) 표현을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대응을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연속 행위는 완결된 공적인 언어 사용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말하는 연습과 생각하는 연습을 병행하지 않은 탓이다. 국어 공부는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를 뛰어넘어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566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224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7132
3150 마라톤 / 자막교정기 風文 2020.05.28 1540
3149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1541
3148 배운 게 도둑질 / 부정문의 논리 風文 2023.10.18 1542
3147 ‘폭팔’과 ‘망말’ 風文 2024.01.04 1542
3146 오염된 소통 風文 2022.01.12 1543
3145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도’와 나머지 風文 2022.12.06 1543
3144 방방곡곡 / 명량 風文 2020.06.04 1545
3143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風文 2022.09.14 1545
3142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風文 2022.09.03 1552
3141 콩글리시 風文 2022.05.18 1553
3140 노랗다와 달다, 없다 風文 2022.07.29 1553
3139 괄호, 소리 없는, 반격의 꿔바로우 風文 2022.08.03 1553
3138 성인의 세계 風文 2022.05.10 1555
3137 말다듬기 위원회 / 불통 風文 2020.05.22 1559
3136 정치의 유목화 風文 2022.01.29 1560
3135 ‘시끄러워!’, 직연 風文 2022.10.25 1563
3134 개양귀비 風文 2023.04.25 1565
3133 한글의 약점, 가로쓰기 신문 風文 2022.06.24 1577
3132 ‘~면서’, 정치와 은유(1): 전쟁 風文 2022.10.12 1578
3131 멋지다 연진아, 멋지다 루카셴코 風文 2023.04.17 1584
3130 헛스윙, 헛웃음, 헛기침의 쓸모 風文 2023.01.09 1585
3129 너무 風文 2023.04.24 158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