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11.02 15:57

방언의 힘

조회 수 151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방언의 힘

우리는 서울말에다가 ‘표준’이라는 큰 권위를 실어준 반면, 나머지 여러 지역 방언들은 그냥 알아서 살아남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보니 방언은 지역 사람들의 애환과 정서를 담아가면서 언어 생태계 속에서 조용히 시들어 버리기도 했고 들풀처럼 뻗어나가기도 했다.

방언은 종종 특이한 어휘를 표준어에 보태주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낱낱의 단어가 아닌 옹근 문장이 통째로 널리 쓰이게 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그 문장 속에 탁월한 표현력, 촌철살인의 재치나 유용함이 깃들어 있을 때의 일이다.

한때 대통령 선거에 나돌았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그 지역 사람들의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었다. 그 쓰임이 배타적이지만 않다면 이처럼 마음을 울렁이며 사람을 뭉치게 만드는 말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또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은 아무리 애써도 되풀이되어 일어나는 액운이나 불행 앞에서 느껴지는 망연자실함에 공감하게 한다. 이러한 말들을 각각 “우리가 남인가?”라든지 “어째 이런 일이!”라고 서울말로 ‘번역’해서는 도저히 그 말맛을 옮기지 못한다.

요즘 한 영화에서 비롯한 “뭣이 중헌디?”라는 말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살피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에게 한번 주위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이 말도 “뭐가 중요한데?”라고 번역을 해서는 그 깊은 뜻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 쳇바퀴 돌리듯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는 말, 그건 기성품 같은 표준어보다는 생태계에서 풍부한 정서를 주워 담아온 방언이 제격이다. 자잘한 낱말이 아닌 하나의 온전한 문장으로, 뼈 있는 표현을 던져줌으로써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방언의 또 다른 힘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5150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175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6667
3128 한글의 약점, 가로쓰기 신문 風文 2022.06.24 1570
3127 형용모순, 언어의 퇴보 風文 2022.07.14 1575
3126 너무 風文 2023.04.24 1575
3125 온나인? 올라인? 風文 2024.03.26 1577
3124 기림비 2 / 오른쪽 風文 2020.06.02 1583
3123 지도자의 화법 風文 2022.01.15 1583
3122 헛스윙, 헛웃음, 헛기침의 쓸모 風文 2023.01.09 1583
3121 어쩌다 보니 風文 2023.04.14 1583
3120 지명의 의의 風文 2021.11.15 1584
3119 '넓다'와 '밟다' 風文 2023.12.06 1585
3118 후텁지근한 風文 2023.11.15 1587
3117 아이 위시 아파트 風文 2023.05.28 1588
3116 맞춤법을 없애자, 맞춤법을 없애자 2 風文 2022.09.09 1594
3115 울타리 표현, 끝없는 말 風文 2022.09.23 1594
3114 배레나룻 風文 2024.02.18 1594
3113 국가의 목소리 風文 2023.02.06 1595
3112 표준말의 기강, 의미와 신뢰 風文 2022.06.30 1599
3111 존맛 風文 2023.06.28 1602
3110 단골 風文 2023.05.22 1603
3109 참고와 참조 風文 2023.07.09 1604
3108 위탁모, 땅거미 風文 2020.05.07 1605
3107 인기척, 허하다 風文 2022.08.17 160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