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9.15 12:46

비판과 막말

조회 수 10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비판과 막말

언제부턴지 우리 정치판에서 ‘막말’이라는, 개념이 불투명한 말이 남용되고 있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저급한 표현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시퍼렇게 날이 선 비판적인 표현에도 똑같은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냉정한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개인적인 언어활동이기도 하면서 사회집단의 의견과 마음을 ‘대변’하는 기능도 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피해를 본 억울한 집단을 대변하려 한다면 그 어찌 곱고 단정한 어휘로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또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국가기관을 비판하거나 책임자를 추궁하는 일에 어찌 무미건조한 어휘로 그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겠는가? 언어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려면 풍자, 비유, 조소 등에 매우 능해야 하고, 강자에 대한 도전 의식과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도 필수적이다. 또 비판적인 언어는 주어진 판세 자체를 흔드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얌전한 말만 골라 쓰자고 강요한다면 기존 판세에서 가장 유리한 사람들이 또 덕을 보게 된다. 새로운 판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매우 강하게, 맵게, 매몰차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막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주장은 사실상 누군가의 편을 드는 셈이다. 더구나 개념이 불분명하면 정치적 약자 아무한테나 뒤집어씌우기도 딱 좋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소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책임은 언론 매체에 있다. 따라서 목청을 높여 누가 막말을 했다고 요란을 떨기보다는 왜 그 말을 했는지, 그 말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예리하고 차분하게 보도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이 그 ‘맥락’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그다음의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보도 매체가 스스로 정치하려고 나서니까 불분명한 개념으로 우리의 정치가, 정치인들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156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806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3018
3106 4·3과 제주어, 허버허버 風文 2022.09.15 1505
3105 국가의 목소리 風文 2023.02.06 1509
3104 독불장군, 만인의 ‘씨’ 風文 2022.11.10 1516
3103 바람을 피다? 風文 2024.01.20 1517
3102 이 자리를 빌려 風文 2023.06.06 1520
3101 공화 정신 風文 2022.01.11 1522
3100 기림비 2 / 오른쪽 風文 2020.06.02 1525
3099 맞춤법을 없애자, 맞춤법을 없애자 2 風文 2022.09.09 1525
3098 금수저 흙수저 風文 2024.02.08 1528
3097 지도자의 화법 風文 2022.01.15 1529
3096 열쇳말, 다섯 살까지 風文 2022.11.22 1530
3095 ‘끄물끄물’ ‘꾸물꾸물’ 風文 2024.02.21 1537
3094 질척거리다, 마약 김밥 風文 2022.12.01 1541
3093 ‘걸다’, 약속하는 말 / ‘존버’와 신문 風文 2023.10.13 1541
3092 위탁모, 땅거미 風文 2020.05.07 1550
3091 ‘괴담’ 되돌려주기 風文 2023.11.01 1550
3090 존맛 風文 2023.06.28 1552
3089 8월의 크리스마스 / 땅꺼짐 風文 2020.06.06 1554
3088 ‘요새’와 ‘금세’ 風文 2024.02.18 1559
3087 납작하다, 국가 사전을 다시? 주인장 2022.10.20 1567
3086 ‘외국어’라는 외부, ‘영어’라는 내부 風文 2022.11.28 1567
3085 참고와 참조 風文 2023.07.09 156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