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9.14 17:33

무제한 발언권

조회 수 101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무제한 발언권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무한정 할 수 있는 기회는 여간해서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아무리 너그럽게 상담이나 면담을 해준다고 해도 일정한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복을 비는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결혼식 주례사가 30분 이상 계속된다면 그저 지겨운 잔소리처럼 느끼지 않겠는가.

의회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약점도 퍽 많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장점은 다양한 의견 차이를 최소화시키면서, 느리지만, 가장 공통성이 강한 의견으로 수렴되어 나가는 과정에 있다. 또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다수결 방식으로는 최선의 결정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소수파라 해서 항상 무의미한 의견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다수파의 오만과 오판에서 비롯한 잘못된 결정은 얼마나 많았는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무제한 발언권을 보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수파의 입장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무제한 발언권을 소수파가 한다면 눈물겨운 하소연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다수파가 한다면 무도한 행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제도는 분명히 효율성에는 문제가 있으나 다수파의 횡포나 오류를 미리 방지하고 소수파의 역할을 보장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노래방에서 한 사람이 마이크를 독점하면 그만큼 재미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차대한 정책을 짜증을 자제하면서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은 매우 값진 제도적 산물이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많은 보도 매체들이 마치 운동 시합 중계하듯 누구는 몇 시간, 또 누구는 몇 시간 하면서 마치 발언 시간 경쟁이 붙은 것처럼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진정 필요한 것은 도대체 무슨 문제가 논쟁의 핵심인지를 객관적으로 보도해주면서, 무제한 발언 과정에서 나타난 민심과 여론의 향배를 정치적 합의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393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10554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5220
3106 참고와 참조 風文 2023.07.09 1841
3105 '넓다'와 '밟다' 風文 2023.12.06 1841
3104 ‘파바’와 ‘롯리’ 風文 2023.06.16 1842
3103 우리나라 風文 2023.06.21 1842
3102 혼성어 風文 2022.05.18 1845
3101 '마징가 Z'와 'DMZ' 風文 2023.11.25 1845
3100 웨하스 / 염장 風文 2020.06.10 1846
3099 ‘~스런’ 風文 2023.12.29 1847
3098 할 말과 못할 말 風文 2022.01.07 1848
3097 청마 / 고명딸 風文 2020.05.23 1853
3096 헛스윙, 헛웃음, 헛기침의 쓸모 風文 2023.01.09 1857
3095 헤로인 / 슈퍼세이브 風文 2020.06.03 1864
3094 ‘걸다’, 약속하는 말 / ‘존버’와 신문 風文 2023.10.13 1864
3093 한글박물관 / 월식 風文 2020.06.09 1865
3092 존맛 風文 2023.06.28 1865
3091 빛깔 이름/ 염지 風文 2020.05.18 1867
3090 공화 정신 風文 2022.01.11 1870
3089 후텁지근한 風文 2023.11.15 1871
3088 ‘폭팔’과 ‘망말’ 風文 2024.01.04 1874
3087 와이로 / 5678님 風文 2020.06.05 1875
3086 마마잃은중천공? / 비오토프 風文 2020.07.03 1887
3085 ‘외국어’라는 외부, ‘영어’라는 내부 風文 2022.11.28 188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