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2.12.21 15:16

통음

조회 수 21483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통음

“주정꾼을 가리켜 후(酗, 주정하다)라 한 것은 그 흉덕을 경계함이요, 술그릇에 주(舟, 배)가 있는 것은 배가 엎어지듯 술에 빠질 것을 경계함이지요. 배(盃, 잔)는 풀이하면 ‘불명’(不皿, 가득 채우지 말라)이 되고, 창(戈) 두 개가 그릇(皿) 위에 있는 잔(盞)은 ‘서로 다툼을 경계’한 것이고… ‘술 유’(酉) 부에 졸(卒, 죽다)의 뜻을 취하면 취(醉) 자가 되고 생(生, 살다)이 붙으면 술 깰 성(醒) 자가 되지요.” 다산 정약용이 간밤의 통음했던 자리를 떠올리며 영재 유득공에게 보낸 답장 중에 나오는 말이다. 말년에는 차를 즐겼던 다산이지만 젊었을 때는 작취미성(어제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아니함)의 날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밤중에 책상치고 벌떡 일어나(中夜拍案起, 중야박안기) / 탄식하며 높은 하늘을 쳐다보네(歎息瞻高穹, 탄식첨고궁) / … /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끓어오르니(念腸內沸, 부념장내비) / 술이나 진탕 마시고 무심으로 돌아가 볼까(痛飮求反眞, 통음구반진) / … / 곰곰 생각하면 속만 타기에(深念焦肺肝, 심념초폐간) / 또 술잔이나 들어 마신다네(且飮杯中, 차음배중록)….

다산이 43살 때 쓴 212행의 한시 ‘하일대주’(夏日對酒, 여름날 술을 앞에 놓고)의 한 대목이다.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에 밀려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이 통음했던 까닭은 자신의 개혁 프로그램을 제대로 펴기 어려웠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통음(通音)을 위한 통음(痛飮)이기도 했을 것이고.

통음(痛飮)의 뜻은 ‘술을 매우 많이 마심’이고 통음(通音)은 ‘소식이나 편지 따위를 주고받음’이다.(표준국어대사전) ‘음’(音)에는 ‘말, 언어’의 뜻이 있으니 통음(通音)의 한자 뜻을 새겨 넓게 해석하면 ‘말이나 뜻이 통함’이기도 하다. 통음은 곧 ‘소통’인 것이다. 이런 뜻으로, 이번에 뽑힌 새 대통령은 국민을 통음(痛飮)하게 하지 않는 ‘통음(通音)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137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793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2825
3150 지긋이/지그시 風文 2023.09.02 1684
3149 노랗다와 달다, 없다 風文 2022.07.29 1685
3148 성인의 세계 風文 2022.05.10 1687
3147 콩글리시 風文 2022.05.18 1691
3146 만인의 ‘씨’(2) /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風文 2022.11.18 1691
3145 괄호, 소리 없는, 반격의 꿔바로우 風文 2022.08.03 1693
3144 ‘파바’와 ‘롯리’ 風文 2023.06.16 1695
3143 배운 게 도둑질 / 부정문의 논리 風文 2023.10.18 1695
3142 어쩌다 보니 風文 2023.04.14 1696
3141 성적이 수치스럽다고? 風文 2023.11.10 1696
3140 국어 영역 / 애정 행각 風文 2020.06.15 1697
3139 국가의 목소리 風文 2023.02.06 1698
3138 북한의 ‘한글날’ 風文 2024.01.06 1699
3137 지도자의 화법 風文 2022.01.15 1702
3136 ‘부끄부끄’ ‘쓰담쓰담’ 風文 2023.06.02 1707
3135 ‘건강한’ 페미니즘, 몸짓의 언어학 風文 2022.09.24 1708
3134 단골 風文 2023.05.22 1709
3133 아이 위시 아파트 風文 2023.05.28 1711
3132 개양귀비 風文 2023.04.25 1712
3131 ‘~스런’ 風文 2023.12.29 1712
3130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도’와 나머지 風文 2022.12.06 1713
3129 너무 風文 2023.04.24 171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