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03.07 00:50

피랍되다

조회 수 9536 추천 수 1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피랍되다

우리는 매우 많은 한자말을 쓴다. 그러나 한자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자로 적을 필요는 없다.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한자병용을 주장하는 이들일지라도 ‘학교, 비행기, 세탁소, 미장원, 극장’ 같은 낱말까지 꼭 한자로 적어야 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자말 중에는 한문 어순으로 된 말이 있다. ‘살인’(殺人) 같은 말이다. ‘살’이 동사이고 ‘인’이 목적어다. 우리말과는 어순이 다르다.

“북한 선원들이 탄 선박이 피랍된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 선원들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사건을 다룬 신문기사의 한 구절이다. 기사에 쓰인 ‘피랍’(被拉)도 한문 어순으로 된 낱말이다. ‘납치되다’라는 뜻의 피동어로서 역시 우리말과는 어순이 다르다. ‘피랍’ 자체가 피동어인데, 거기에 ‘되다’라는 피동접미사를 붙이면 이중피동이 된다. 이중피동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방사선에 피폭되다”와 같은 말은 이중피동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이중피동을 쓰는 것이 편하다. 이중피동을 피한답시고 ‘피랍된’을 ‘피랍한’으로 하면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과 동떨어진다. 그러나 ‘피랍된’도 아니고 ‘피랍한’도 아닌 ‘납치된’이라는 좋은 말이 있다. ‘납치된’이라고 하면 눈에도, 귀에도 훨씬 빨리 들어온다. 다만 제목에 쓸 때는 접미사를 빼버리고 ‘피랍’으로 써야 하는데, 이때 ‘납치’를 쓰면 주객이 바뀌어 버린다. 그러나 이때도 한 글자만 더 붙여 ‘납치돼’로 하면 해결된다.

우재욱/시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169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8302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3144
3238 적과의 동침, 어미 천국 風文 2022.07.31 1548
3237 저리다 / 절이다 風文 2023.11.15 1548
3236 몸으로 재다, 윙크와 무시 風文 2022.11.09 1549
3235 말의 평가절하 관리자 2022.01.31 1550
3234 생각보다, 효녀 노릇 風文 2022.09.02 1551
3233 부동층이 부럽다, 선입견 風文 2022.10.15 1551
3232 순직 風文 2022.02.01 1553
3231 돼지껍데기 風文 2023.04.28 1553
3230 귀 잡수시다? 風文 2023.11.11 1558
3229 ‘선진화’의 길 風文 2021.10.15 1560
3228 뉴 노멀, 막말을 위한 변명 風文 2022.08.14 1562
3227 자백과 고백 風文 2022.01.12 1564
3226 마라톤 / 자막교정기 風文 2020.05.28 1565
3225 말로 하는 정치 風文 2022.01.21 1565
3224 직거래하는 냄새, 은유 가라앉히기 風文 2022.08.06 1565
3223 두꺼운 다리, 얇은 허리 風文 2023.05.24 1565
3222 마녀사냥 風文 2022.01.13 1566
3221 방방곡곡 / 명량 風文 2020.06.04 1567
3220 어떻게 토론할까, 질문 안 할 책임 風文 2022.07.24 1570
3219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風文 2023.11.14 1571
3218 '밖에'의 띄어쓰기 風文 2023.11.22 1571
3217 마그나 카르타 風文 2022.05.10 157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