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5.23 02:14

수자리와 정지

조회 수 8062 추천 수 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수자리와 정지

땅이름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에정지’는 양주동의 <여요전주> 이후로 경상 방언 ‘부억’을 뜻한다고 푼다. 부엌에 해당하는 ‘정지’가 있다고 해서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정지 가다가 드로라”를 ‘부엌에 가다가 듣는다’로 푸는 건 부자연스럽다.

땅이름에는 정자·군막 같은 인조물에서 비롯된 것들도 많다. 넓은 들이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정자를 짓고 나그네들의 쉼터로 이용하거나 은둔의 근거지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정자가 있던 마을에는 으레 ‘정자골’이 생겨난다. ‘정’(亭)은 또한 역참·군막을 일컫기도 했으니 ‘수자리’와도 관련이 깊다. 신라 때 군사 제도인 ‘9정’ 역시 수자리와 관련을 맺는다. ‘수자리’의 수는 ‘지킬 수’[守]와 음이 같고, 이는 ‘술·숯’과 음이 유사하다. 따라서 ‘수자리’ 대신 ‘술골·숯골’이 생겨나며, 이런 땅이름은 ‘술 주’[酒], ‘숯 탄’[炭]을 가져다 ‘주곡·주동·탄곡·탄동’으로 바꾼다. 이쯤 되면 ‘수자리’의 본뜻은 사라지고 술이나 숯과 관련된 땅이름처럼 여겨진다.

‘에정지’는 ‘어정지’(於亭地)로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고시조에서 한자어 ‘어혈지다’를 ‘에혈지다’로 표기한 사례가 있듯, 어조사 ‘어’(於)를 ‘에’로 발음하는 것은 흔하며, ‘정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청산별곡>은 ‘사슴탈을 쓴 배우가 장대에 올라 해금 켜는 것을 듣는 장면’을 그렸으므로, 굳이 부엌에 가다가 들었다기보다 ‘정지’에 가다가 들었다는 뜻으로 푸는 게 자연스럽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157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807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3023
3106 효시 바람의종 2007.10.08 13536
3105 떼부자 바람의종 2007.10.08 11662
3104 휘하 바람의종 2007.10.09 13316
3103 단소리/쓴소리 바람의종 2007.10.09 11592
3102 휴거 바람의종 2007.10.10 15121
3101 얼과 넋 바람의종 2007.10.10 8546
3100 희망 바람의종 2007.10.11 11090
3099 ‘부럽다’의 방언형 바람의종 2007.10.11 9193
3098 감안하다 바람의종 2007.10.12 15100
3097 새말 만들기 바람의종 2007.10.12 7785
3096 (공장)부지 바람의종 2007.10.13 7705
3095 ‘우거지붙이’ 말 바람의종 2007.10.13 10480
3094 기라성 바람의종 2007.10.14 7586
3093 쉬다와 놀다 바람의종 2007.10.14 10198
3092 납득하다 바람의종 2007.10.16 9308
3091 방언은 모국어다 바람의종 2007.10.16 8815
3090 단수 정리 바람의종 2007.10.17 16267
3089 청소년의 새말 바람의종 2007.10.17 11123
3088 대합실 바람의종 2007.10.18 8884
3087 우리 바람의종 2007.10.18 8955
3086 수순 바람의종 2007.10.19 10346
3085 분루 바람의종 2007.10.19 1102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