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2.22 06:05

여보세요?

조회 수 67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여보세요?

 휴대전화는 예전엔 안 하던 고민을 하게 만든다. 유선전화는 누구 전화인지 알고 싶으면 무조건 받아야 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액정화면에 ‘아는 사람’과 ‘모르는 번호’를 또렷이 구분해 보여준다. 모르는 번호면, 모르는 사람일 텐데…. 받을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대부분 보험 가입을 권하는 광고전화. 목화솜이불을 닮은 나는 전화를 끊지 못해 계속 들어주다 미안함만 쌓인다.

그렇긴 하지만,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가 광고전화라는 걸 언제 아는가? 생각보다 빠르다. 딱 첫마디! 두번째도 아닌 첫번째. 당신도 마찬가지일 테지. 광고전화는 “여보세요?”라는 말에 “반갑습니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 고객님 맞으신가요?”라고 말한다. 처음 통화하는 사람이 주고받으며 채워나가는 대화의 쌍을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광고전화라는 걸 쉽게 들킨다.

우리는 전화를 받으면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십중팔구 “여보세요?”라고 대답한다. 첫마디가 뭐냐에 따라 내 답이 달라진다. 전화받는 사람이 “네, ○○부 홍길동입니다”라고 말하면 나도 “네, 저는 누구누구입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자기 이름만 말했지만, 나도 내 이름을 밝히게 된다. 자기 이름을 밝히는 건 전화 건 사람도 이름을 밝혀달라는 메시지이다. 전화받는 사람이 “네, ○○부입니다”라고만 말하면, 나도 내가 누구인지 밝히고 싶지 않다.

비록 전화를 통해서지만, 우리는 대화를 하지 대본을 읽는 게 아니다. 말의 질서는 무척 섬세하고 교묘하다. 빈자리를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우리의 대화는 암묵적이면서도 명시적이다. 아는 형이 전화해 “저녁에 뭐 해?”라고 묻는다면 이유는 뻔하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837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492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9827
3410 훈방, 석방 바람의종 2010.07.23 14611
3409 훈민정음 반포 565돌 바람의종 2011.11.20 14428
3408 후텁지근한 風文 2023.11.15 917
3407 후덥지근 / 후텁지근 바람의종 2012.05.30 11371
3406 효시 바람의종 2007.10.08 13366
3405 효능, 효과 바람의종 2010.04.25 10512
3404 횡설수설 1 바람의종 2010.11.11 15021
3403 획정, 확정 바람의종 2008.12.10 14838
3402 회피 / 기피 바람의종 2012.07.05 11692
3401 회가 동하다 바람의종 2008.02.01 20104
3400 홰를 치다 바람의종 2008.02.01 39447
3399 황제 바람의종 2012.11.02 18375
3398 황소바람 바람의종 2010.09.04 11793
3397 황새울과 큰새 바람의종 2008.01.24 11021
3396 황금시간 / 우리말 속 일본어 風文 2020.06.11 1782
3395 활개를 치다 바람의종 2008.02.01 12557
3394 환멸은 나의 힘 / 영어는 멋있다? 風文 2022.10.28 1109
3393 환갑 바람의종 2007.10.06 18074
3392 화이바 바람의종 2009.09.24 10526
3391 화성돈 바람의종 2012.08.30 10709
3390 홑몸, 홀몸 바람의종 2009.02.14 12008
3389 홍일점 바람의종 2010.10.06 1480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