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씨가 말했다
생존자 이주현씨는 10·29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이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이 짧은 5분 안에 제 마음과 생각을 다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못다 한 말들은 그냥 다 없는 말이 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는 분향소보다는 이태원을 자주 갔습니다. 그 참사 현장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고 저라도 선명히 계속 기억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의 벽 앞에도 자주 갔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메모지에 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말 몇 마디로, 몇 줄의 문장으로 어떻게 이 마음을 다 표현합니까.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분향소 앞에서 그분들의 영정을 마주 볼 때는 한 가지 말을 되뇔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좋겠느냐’고. 그 질문만을 갖고 영정 앞에 섰습니다. 꿈에서조차 그 답을 들려주는 분은 없었어요. 그래서 살아 계실 적에 그분들이 제일 원했던 것, 이태원의 핼러윈을 제대로 즐기는 것, 그거라도 대신 해 드리고자 어제 이태원을 방문했습니다.
새벽에 밤하늘을 봤는데 보름달이 굉장히 밝더라구요. 달이 그렇게 밝은데, 별이 너무 잘 보였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 느꼈어요. 저는 그분들과 함께할 겁니다. 외면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에 서 있을 거고, 생존자로 계속 남아 있을 거고,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계속 기억할 것입니다. 함께해 주세요.
생존자로서 다른 생존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 자리 그대로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춥습니다. 모든 분들, 따뜻하게 잘 챙겨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부터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삶은 우리를 죽지 못하도록 막는다.(루카치)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60802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207333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222240 |
3194 | 되묻기도 답변? | 風文 | 2022.02.11 | 1592 |
3193 | '바치다'와 '받치다' | 風文 | 2023.01.04 | 1593 |
3192 | 쌤, 일부러 틀린 말 | 風文 | 2022.07.01 | 1594 |
3191 | 한글의 역설, 말을 고치려면 | 風文 | 2022.08.19 | 1594 |
3190 | 수능 국어영역 | 風文 | 2023.06.19 | 1595 |
3189 | 인쇄된 기억, 하루아침에 | 風文 | 2022.08.12 | 1600 |
3188 | 말다듬기 위원회 / 불통 | 風文 | 2020.05.22 | 1600 |
3187 | 일타강사, ‘일’의 의미 | 風文 | 2022.09.04 | 1601 |
3186 | 남과 북의 협력 | 風文 | 2022.04.28 | 1602 |
3185 | 통속어 활용법 | 風文 | 2022.01.28 | 1604 |
3184 | 주권자의 외침 | 風文 | 2022.01.13 | 1609 |
3183 | ‘맞다’와 ‘맞는다’, 이름 바꾸기 | 風文 | 2022.09.11 | 1611 |
3182 | 보편적 호칭, 번역 정본 | 風文 | 2022.05.26 | 1614 |
3181 | 무술과 글쓰기, 아버지의 글쓰기 | 風文 | 2022.09.29 | 1621 |
3180 | 드라이브 스루 | 風文 | 2023.12.05 | 1622 |
3179 | 식욕은 당기고, 얼굴은 땅기는 | 風文 | 2024.01.04 | 1622 |
3178 | 가족 호칭 혁신, 일본식 외래어 | 風文 | 2022.06.26 | 1623 |
3177 |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 風文 | 2022.12.02 | 1624 |
3176 | 방언의 힘 | 風文 | 2021.11.02 | 1627 |
3175 |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 風文 | 2022.09.14 | 1629 |
3174 | “힘 빼”, 작은, 하찮은 | 風文 | 2022.10.26 | 1630 |
3173 | ‘며칠’과 ‘몇 일’ | 風文 | 2023.12.28 | 1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