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1.03 00:19

말하는 입

조회 수 93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말하는 입

입이 하는 일이 적지 않다. 먹기, 말하기, 노래하기, 숨쉬기, 사랑하기, 토하기. 물어뜯기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순간순간 다른 신체 기관과 연결되어야 한다. 입의 이런 역할은 단어를 만들 때도 발자국처럼 따라다닌다. ‘입요기’ ‘입가심’ ‘입걱정’ ‘입덧’ 같은 말은 ‘먹는 입’과 관련이 있다. ‘입바람’ ‘입방귀’는 ‘숨 쉬는 입’과 연결된다. ‘입맞춤’은 당연히 ‘사랑하는 입’이겠고.

인간은 말하는 기계인지라, ‘입’이 들어간 단어에는 ‘말하기’와 관련된 게 많다. 입단속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란 마음으로 ‘말하는 입’ 얘기를 중얼거린다.

아침 댓바람부터 입담 센 몽룡과 입놀림 가벼운 춘향이 입방아를 찧는다. 서로 꿍짝이 맞아 입씨름 한번 없이 하나가 떠들면 하나는 “오호! 그래?” 하며 입장단을 맞춘다. 두 사람의 입길에 오르면 멀쩡한 사람도 순식간에 몹쓸 사람이 되어 입소문이 퍼진다. 이번엔 길동이가 입초시에 올랐다. 입바른 소리만 하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미움을 사고 있다는 것. 입심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길동은 두 사람을 살살 구슬리는 입발림 소리도 해봤지만 입막음이 되지 않았다. 급기야 그렇게 입방정을 떨다가는 큰코다칠 거라고 겁박을 했더니 그제야 수그러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자기 발밑을 살피는 길뿐이다(조고각하, 照顧脚下). 발밑만큼이나 입도 잘 살피시길. 입에 담지 못할 말은 입에 담지 않으며, ‘입만 살았다’는 비아냥을 안 듣기 위해서라도 몸과 마음이 함께 살아 있는 새해가 되길 비나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8302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486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199774
3322 울과 담 바람의종 2008.01.12 7401
3321 고양이 바람의종 2008.01.12 7738
3320 서울 바람의종 2008.01.12 6296
3319 말높이기 바람의종 2008.01.13 6169
3318 맞부닥치다 바람의종 2008.01.13 7255
3317 가와 끝 바람의종 2008.01.13 6567
3316 열쇠 바람의종 2008.01.14 7734
3315 예천과 물맛 바람의종 2008.01.14 8485
3314 과거시제 바람의종 2008.01.14 7935
3313 쓸어올리다 바람의종 2008.01.15 8553
3312 그치다와 마치다 바람의종 2008.01.15 7231
3311 쇠뜨기 바람의종 2008.01.15 7007
3310 여우골과 어린이말 바람의종 2008.01.16 6499
3309 미래시제 바람의종 2008.01.16 7432
3308 물혹 바람의종 2008.01.16 5577
3307 굴레와 멍에 바람의종 2008.01.17 7447
3306 나무노래 바람의종 2008.01.17 7484
3305 압록강과 마자수 바람의종 2008.01.18 6692
3304 성별 문법 바람의종 2008.01.18 6693
3303 윽박 바람의종 2008.01.18 10050
3302 말과 글 바람의종 2008.01.19 3957
3301 며느리밥풀 바람의종 2008.01.19 579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