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1.12 22:40

자백과 고백

조회 수 13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자백과 고백

자백이란 말과 고백이란 말은 생김새도 비슷하고, 같은 한자도 들어 있고 하니까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곱씹어보면 그 차이는 크고도 크다. 사용자의 태도와 심성, 사용되는 언어의 가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을 ‘자백’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조금이라도 더 숨기거나 줄여보려고 한다. 죗값이 가벼운 쪽으로 저울질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백을 요긴하게 이용하려면 잘못의 주체를 ‘타인’으로 삼고 적당히 둘러대야 ‘법적’으로는 조금이나마 유리해진다. 신문을 당하며 조금만 살짝 자백하고 더 추궁당하면 또 찔끔 자백하고, 요리 빼고 조리 빼고 하면서, 신문자와 씨름을 하게 된다. 신문하는 사람이나 옆에서 보는 사람이나 분노를 느끼게 된다. 자백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 추해진다.

자백이 아닌 ‘고백’은 신문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가 다 털어놓는 것이다. 그 안에는 자기 잘못도 들어 있으며 또한 잘못된 판단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뉘우침이 담겨 있다. 고백의 주체는 오로지 ‘나’이다. 그러니 고백에는 핑계와 둘러대기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한 행위와 심정을 적은 고백문학이 값진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백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 맑아진다. 비록 윤리적으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많은 가르침을 남기기도 한다.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자백이 아닌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에 마땅히 뒤따라야 할 올바른 후속 행위이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견뎌가며 사는 이들에게 이렇게 정치적 불안정을 오래 강요하는 것은 대통령 자신과 국민 양쪽에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을 불러온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국민이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229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8811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3801
3150 제비초리 바람의종 2007.03.23 14090
3149 눌은밥, 누른밥, 누룽지 / 눌어붙다, 눌러붙다 바람의종 2009.05.28 14088
3148 짬이 나다 바람의종 2008.01.30 14082
3147 진안주 바람의종 2010.10.30 14067
3146 늘상, 노상, 천상, 천생 바람의종 2009.11.03 14067
3145 북한의 국화는 목란꽃 바람의종 2010.01.18 14063
3144 우려먹다(울궈먹다) 바람의종 2007.03.03 14049
3143 자문을 구하다? 바람의종 2010.05.05 14036
3142 도매급으로 넘기다 바람의종 2010.04.24 14025
3141 이녁 바람의종 2007.03.15 14020
3140 여보 바람의종 2010.07.05 14012
3139 학부모 / 학부형 바람의종 2010.09.29 13987
3138 응큼, 엉큼, 앙큼 바람의종 2010.01.14 13975
3137 금세, 금새 / 여태, 입때 / 늘상, 항상 바람의종 2008.12.15 13974
3136 참고와 참조 바람의종 2010.08.03 13936
3135 쌍거풀, 쌍가풀, 쌍꺼풀, 쌍까풀 바람의종 2012.07.27 13935
3134 히읗불규칙활용 바람의종 2010.10.21 13907
3133 안정화시키다 바람의종 2012.04.23 13902
3132 쪼달리다, 쪼들리다 / 바둥바둥, 바동바동 바람의종 2012.09.27 13898
3131 폭발, 폭팔, 폭파시키다 바람의종 2010.02.25 13895
3130 입추의 여지가 없다 바람의종 2008.01.28 13880
3129 늑장, 늦장/터뜨리다, 터트리다/가뭄, 가물 바람의종 2008.12.27 1386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