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9.15 12:46

비판과 막말

조회 수 96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비판과 막말

언제부턴지 우리 정치판에서 ‘막말’이라는, 개념이 불투명한 말이 남용되고 있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저급한 표현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시퍼렇게 날이 선 비판적인 표현에도 똑같은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냉정한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개인적인 언어활동이기도 하면서 사회집단의 의견과 마음을 ‘대변’하는 기능도 한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피해를 본 억울한 집단을 대변하려 한다면 그 어찌 곱고 단정한 어휘로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또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국가기관을 비판하거나 책임자를 추궁하는 일에 어찌 무미건조한 어휘로 그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겠는가? 언어를 비판적으로 사용하려면 풍자, 비유, 조소 등에 매우 능해야 하고, 강자에 대한 도전 의식과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도 필수적이다. 또 비판적인 언어는 주어진 판세 자체를 흔드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얌전한 말만 골라 쓰자고 강요한다면 기존 판세에서 가장 유리한 사람들이 또 덕을 보게 된다. 새로운 판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매우 강하게, 맵게, 매몰차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막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주장은 사실상 누군가의 편을 드는 셈이다. 더구나 개념이 불분명하면 정치적 약자 아무한테나 뒤집어씌우기도 딱 좋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소통을 이어주는 중요한 책임은 언론 매체에 있다. 따라서 목청을 높여 누가 막말을 했다고 요란을 떨기보다는 왜 그 말을 했는지, 그 말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예리하고 차분하게 보도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이 그 ‘맥락’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그다음의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보도 매체가 스스로 정치하려고 나서니까 불분명한 개념으로 우리의 정치가, 정치인들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8251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468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9633
3194 이름 짓기, ‘쌔우다’ 風文 2022.10.24 1264
3193 쌤, 일부러 틀린 말 風文 2022.07.01 1270
3192 세로드립 風文 2021.10.15 1272
3191 부동층이 부럽다, 선입견 風文 2022.10.15 1272
3190 언어적 적폐 風文 2022.02.08 1273
3189 혼성어 風文 2022.05.18 1274
3188 수능 국어영역 風文 2023.06.19 1274
3187 무술과 글쓰기, 아버지의 글쓰기 風文 2022.09.29 1276
3186 ‘건강한’ 페미니즘, 몸짓의 언어학 風文 2022.09.24 1277
3185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風文 2024.02.17 1277
3184 배레나룻 風文 2024.02.18 1277
3183 두꺼운 다리, 얇은 허리 風文 2023.05.24 1279
3182 ‘나이’라는 숫자, 친정 언어 風文 2022.07.07 1280
3181 “자식들, 꽃들아, 미안하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부디 잘 가라” 風文 2022.12.02 1282
3180 삼디가 어때서 風文 2022.02.01 1283
3179 영어 공용어화 風文 2022.05.12 1284
3178 깻잎 / 기림비 1 風文 2020.06.01 1285
3177 돼지껍데기 風文 2023.04.28 1285
3176 한글의 약점, 가로쓰기 신문 風文 2022.06.24 1286
3175 질문들, 정재환님께 답함 風文 2022.09.14 1290
3174 공적인 말하기 風文 2021.12.01 1291
3173 선정-지정 / 얼룩빼기 황소 風文 2020.05.15 129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157 Next
/ 157